중년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이 땅에서 경쟁력 있게 살아가려면 영어 하나쯤은 확실하게 해 둬야 한다는 미신에 가까운 확신으로 자식을 조기 유학 보내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그래서 기러기 엄마도 되고 아빠도 되어 생과부 생홀아비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다.

기러기는 금실이 지극하다. 암놈이 죽었을 때는 수놈이, 수놈이 죽었을 때는 암놈이 재가하지 않고 독신으로 여생을 마친다. 기러기도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야산에 불이 나 위기일발에 처했을 때 품에 품은 새끼와 함께 타 죽을지언정 새끼 홀로 내버리고 도망갈 줄을 모른다고 한다. 이런 습성들 때문에 기러기는 인간사에 대한 비유로 자주 등장했다. 부부애도 유별난 기러기들이 자식 사랑으로 헤어져 살면서 겪는 말 못할 애환은 한둘이 아니다.

누구나 '나는,우리 부부는 다르다'고 믿고 산다.

'내 아내는 내가 잘 알지. 절대 그럴 주변머리도 없는 사람이야….'

정말 그렇게 믿는 동안은 행복하다. 애들 공부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애들만 외국에 보내려니 안심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부부 중 움직이기 수월한 사람이 엮이게 된다. 떠나는 날짜가 바작바작 다가오면,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얼마간은 굶는다는 생각에 못다할 잠자리를 미리 쟁여놓기라도 하려는 듯 기러기들은 서로 탐닉한다. 별로 성능이 좋진 않아도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며, 아침에도 하고 낮에도 한다. 그러다 D-데이가 되면 울며불며 요란스럽게 영화 한 편을 찍는다.

"몸조심하고 애들 공부나 제대로 시키고 와. 딴 생각하지 말고."

"저나 애들 걱정 말고 제때 밥이나 잘 챙겨 먹어요. 내가 가서 자리 잡히면 왔다 갔다할게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어놓는 아내들,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아내에게 미루는 것 같은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짠한 기분에 그 자리에서 결심한다. '열심히 일하자.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내 새끼들이 낯선 곳에 가서 고생을 덜 하지…'라고. 그리고 몇 년 후 잘 자라 준 자식과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면서 재미 없고 꾀죄죄한 생활을 이어가며 날짜를 죽여 간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기러기 가족'이라 부르는데,대략 3만명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비행이 힘겹지 않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분신이 울타리가 되어 곁에서 힘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에 목숨 거는 일부 엄마들은 남보다 더 잘난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 부부 생이별도 불사한다. 이러다가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식 때문에 헤어져 사는 기러기들이 애써 무시하기 쉬운 것이 잠자리이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아야 활기 차다. 그러나 기러기 가족들은 키스, 애무, 포옹, 섹스 등 사랑을 대체할 만한 것이 없다. 정신적인 사랑? 이것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섹스는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항상 가족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들여다보지만 허전한 몸을 채워 주기에는 역부족. 요즘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 컴퓨터로 화상 채팅을 하기도 한다. 바로 옆에 같이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같이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눈요기는 오히려 사람을 감질나게 한다. 손도 만져보고 머리도 쓰다듬고 뽀뽀도 해보고 안아보고도 싶고 또….

이렇게 애타고 감질나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사람은 누구나 지치게 마련이다. 자신도 모르게 차선책을 찾게 되고 몸을 기댈 언덕이 예전만 못해도 그저 오랜 목마름을 축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통하게 된다. 이럴 때 상대가 그동안 배우자에게선 맛보지 못했던 변강쇠쯤 되면 몸이 먼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새 맛에 길들여지면 서울에서 돈벌이에 여념이 없는 남편은 걸림돌로 비쳐진다.

이럭저럭 유학을 마친 아이들은 부모의 고민은 알 바 없이 떠나갈 테고…. 나이 들어 가도 상처는 아물지 않고 덜 익은 파인애플처럼 인생 후반기를 떫게 살아간다면… 지옥이 따로 없겠지?

기러기 생활을 작심하기 전에 잠자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라. 이 문제를 까발리지 않고 방치하거나 별 거 아닌 것처럼 소홀히하면 인생 후반기는 파탄 나기 십상이다.

성경원 한국성교육연구소 대표 sexeducati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