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삼성은 어떤 모습일까

글로벌 삼성을 기치로 내걸고 세계시장을 향해 질주를 거듭하고 있을까.

아니면 경쟁자들의 집중 견제나 시장환경 악화로 인해 깊은 슬럼프를 겪고 있을까.

그동안 삼성이 보여준 눈부신 성과나 탁월한 경영 시스템,높아진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에 비춰볼 때 낙관론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삼성이 2000년을 전후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던 것을 떠올리면 불과 5년 정도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세계 일류 기업으로 안착했다고 단정하기에는 검증기간이 다소 짧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휴대폰 LCD(액정표시장치)를 잇는 미래 신수종 사업을 발굴하는 데 애를 먹고 있고 핵심 인재 영입·발굴 확대에 따른 부작용으로 기존 임직원들의 결속감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예전같지 않다.

해외 경쟁자들 또한 삼성의 독주를 팔짱 끼고 지켜만 볼 것 같지 않다.

삼성을 견제하고 따돌리기 위한 해외 정보기술(IT) 기업들의 합종연횡은 진작부터 시작됐다.

이 때문에 2002년 4월,이건희 회장이 신라호텔에 사장단을 모아놓고 했던 그 유명한 이야기는 여전히 삼성에 유효하다는 지적이다.

"5년 후,또는 10년 후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식은 땀이 난다."

실제 지난 2월 귀국한 이후 이 회장은 밀린 경영 현안들을 챙기면서 사장단에 긴장과 활력을 동시에 불어넣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요즘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민감대응체제 구축'.3월 말과 4월 초 전자 계열사 사장단에 이어 5월 초 금융 계열사 사장단으로부터 각각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환율과 국제유가,미국과 일본 업체들의 거센 추격과 견제,반기업 정서 확산 등 최근 삼성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삼성측은 설명했다.

이 회장은 "민감대응체제 구축을 통해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아이디어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천신만고 끝에 일류기업의 반열에 올린 이 회장으로서는 또 다른 의미의 '수성(守成)'에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할 상황이다.

이 회장과 삼성이 다가오는 10년을 놓고 고민해야 할 또 하나는 삼성의 성장 방식과 경로다.

세계시장에서 비약적인 성공을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홀로 성장'에 그치고 만다면 삼성은 또 다시 낭패를 겪을 공산이 크다.

즉 삼성이 뿌리를 박고 있는 국내 경제가 동반 성장하지 않는다면 '삼성공화국론'으로 대변되는 견제론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 분명하다.

삼성은 2010년 270조원의 매출 달성에 350조원의 자산 증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출은 2004년의 2배,자산은 3배 수준이다.

지금 수준에서도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한데,만약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지 못할 경우 2010년 삼성의 상대적인 위치는 더욱 비대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회장은 이 같은 상황을 위기로 간주한다.

빈부격차와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하는 구조에서 삼성은 또 다른 규제론자들에게 공격당할 것이 뻔하다.

과거의 삼성은 '큰 것이 죄냐' '기업을 성장시킨 것이 규제를 받아야 하는 이유냐'고 따졌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

자세를 낮추지 않으면 시장에 많은 적들을 만들고 이는 곧 경영위기로 연결된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삼성이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이 돼야 경영외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한 사장은 "요즘 이 회장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룡이 왜 갑자기 멸종됐는지를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라며 "나눔 경영과 상생 경영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 삼성이 발 딛고 있는 사회적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경쟁력이라는 것도 허망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