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은행 보험 등 신용사업과 농산물 유통 등 경제사업을 떼어내는 신·경(信·經)분리를 위해서는 7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며,이를 자체적으로 조달할 경우 15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농협은 30일 대의원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신·경분리 추진계획'을 확정,농림부에 추진계획서를 제출했다.

농림부는 농협의 신·경분리 추진계획 타당성을 올해 초 구성한 신·경분리위원회 등에서 충분히 검토한 뒤 이르면 연내에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농협이 신·경분리 전제조건으로 자본확충(7조8000억원)을 제시하고 이를 마련하는 데 15년이 걸린다는 추진안을 낸 것은 사실상 신·경분리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농협의 신·경분리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재정경제부는 "추가 자본확충 없이도 신·경분리가 가능하다"며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농협 '당장 신·경분리 어렵다'

농협의 신·경분리 추진계획에 따르면 현재 사업부문별 대표이사 체제로 돼 있는 농협중앙회는 △중앙회(교육지원 전담)와 △신용사업연합회(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업) △경제사업연합회(농산물유통 영농지도) 등 3개의 별도 법인으로 분리된다.

그러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한 이후 각 독립법인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7조8000억원의 추가 자본금이 필요하다고 농협은 주장했다.

신용사업의 경우 2007년부터 적용되는 바젤Ⅱ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8%를 유지하기 위해 3조3893억원,경제사업은 농업인 실익사업 수행을 위한 연간 1530억원의 적자 해소와 독립경영을 위해 4조3714억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이익잉여금 적립 등으로 자체 조달하려면 15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정부가 예산으로 무상 지원해줄 경우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협은 이와 함께 신·경분리 이전에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5년까지 조합지원사업준비금을 5조6000억원으로 늘려 적립하는 등 13조원의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재경부 '지주회사 전환 시급'

농협의 신·경분리에 적극적인 재경부는 농협의 계획안에 대해 "타당성이 떨어지는 방안"이라며 "신·경분리는 큰 자본확충 없이 지금이라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경부는 그동안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신·경분리를 해야 하고,이를 위해 농협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농협이 신·경분리를 추진하는 데 추가 자본금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용사업에서 번 돈 중 매년 1500억원 정도를 경제사업 적자를 메워주는 데 쓰고 있지만,농협이 지주회사 체제로 바뀌면 금융자회사들이 그만큼의 순이익을 지주회사에 배당금으로 돌려 그 돈을 다시 경제사업에 지원하면 된다는 얘기다.

재경부는 또 농협의 자본확충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면 신·경분리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해선 "정부 지원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농업협동조합의 근본 이념 자체가 자조(自助)와 자기책임"이라며 "이를 무시하고 정부에 기대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확충이 그렇게 절실하다면 농협이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