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來榮 < 고려대 교수·정치학 >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면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됐다.

그러나 지방선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본격적인 정계개편 조짐은 없고 정치권은 지방선거의 충격으로부터 점차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지방선거 참패와 책임 공방으로 좌초(坐礁) 위기에 놓였던 열린우리당은 김근태 의원을 당의장에 선출해 당의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국정운영의 기조를 재정비하기로 방향을 잡고 최우선 처방으로 '서민경제 해결'을 제시했다.

또한 지난 주에 있었던 여당 지도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회동을 통해 당·청 갈등도 어느 정도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표면적으로는 와해의 위기를 넘겼지만,잠복해있는 당내 갈등을 극복하고 이탈한 지지층을 복원해서 대선경쟁에 나설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우선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당과 청와대,그리고 계파간의 뚜렷한 시각차가 여전히 갈등 요인으로 남아있다.

열린우리당의 딜레마는 현 정부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기조를 대폭 수정할 경우 개혁과 변화를 표방한 당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 있는 반면,개혁정책의 기조를 유지할 경우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여전히 무시하는 독선적(獨善的) 국정운영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의 보다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당내 대권후보들의 지지도가 한 자리수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고건 전 총리 및 민주당과의 정치적 연대도 당내 이견으로 쉽지 않고,또한 지방선거 참패로 정계개편을 주도할 수 있는 힘도 잃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전국정당을 목표로 민주당을 떠나 창당한 열린우리당이 다시 민주당이나 고건 전 총리 세력과의 정계개편에 동조하는 것은 명분도 약하고 당의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고민이다.

여당이 당의 존립을 걸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인 반면,한나라당은 한결 유리한 고지에서 대선에 임하게 됐다.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직을 물러났고,이명박 시장과 손학규 지사도 6월 말로 현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당내 대선 주자간 경쟁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의 압승과 현재 한나라당 정당 지지도가 5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의 내년 대선 승리를 낙관하는 분위기가 한나라당 내에 팽배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우세가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고 차기 대선은 매우 치열한 접전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때이른 대선 낙관론이 한나라당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는데 비해 대선은 미래의 지도자를 뽑는 과정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대선에서는 정당보다는 후보자의 자질이 중요하다.

따라서 누가 후보자가 되는가에 따라서 대선경쟁은 매우 치열한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을 심판하기 위해 표를 몰아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투표한 국민들 상당수가 여전히 한나라당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나타내준다.

오는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누가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되며 대선정국에서 당을 어떻게 이끌고 가는가에 따라 한나라당의 대권도전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번 가을로 접어들면 정치권이 빠르게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경쟁은 각 정당과 후보자가 뚜렷한 비전과 국정(國政)철학,그리고 국정현안들에 대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지지자들을 확보하는 경쟁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대선정국이 정치인들만의 권력게임에 그치지 않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한국사회의 재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