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하락과 고유가,원자재값 상승 등 3중고(苦) 속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기대 이상의 수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상반기에 전년 동기대비 13.9%의 수출증가율을 기록한데 이어 하반기에도 11.4%의 두자릿수 증가율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산업연구원).

이처럼 각종 수출 통계치들이 유례없는 호황국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기업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환율 하락 등의 여파로 수출확대가 채산성 향상으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데다 하반기 경영실적 전망 역시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수출품목의 경우 글로벌 경쟁심화에 따른 가격하락 현상이 심각해 수출이 갑자기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3일 산업자원부와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 달러표시 수출단가지수(2000년=100기준)는 86.5,원화표시 수출단가지수는 79.1에 각각 그쳐 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표시 지수 79.1은 2000년에 1만원이었던 수출제품 가격이 지금은 7910원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그동안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으로 이 격차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수출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에 놓였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4분기 85.2에 달했던 원화표시 지수가 이처럼 큰 폭으로 하락한 이유는 올 상반기 중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평균 환율(963원40전)이 지난해 하반기(1032원90전)에 비해 7.2%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 실속없는 박리다매에 그칠 수도

하지만 업계는 원화표시 지수하락도 문제지만 달러화표시 지수가 처음으로 9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을 더 심각하게 보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하락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달러화표시 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수출단가가 계속 떨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며 "반도체 휴대폰 디지털TV 등 거의 모든 IT(정보기술) 품목들이 글로벌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좀처럼 제 가격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반도체의 경우 올 하반기 수출 물량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금액은 물량에 비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산업연구원의 장석인 주력산업실장은 "올 하반기 반도체 부문의 생산은 모바일 제품의 수요 확대 등에 힘입어 16.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출단가 하락을 감안한 금액기준으로는 8.2%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휴대폰 역시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을 중심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2% 이상의 수출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지만 노키아 모토로라 등과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채산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어려운 경쟁 여건을 뚫고 이뤄낸 수출이 자칫 '속빈 강정'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 환율 추가 하락시 심각한 국면

올 하반기 16.7%의 수출증가율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업종 역시 환율 외에 해외 경쟁업체들의 동향이 경영 실적에 계속 부담을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러시아 중동 중남미 등으로 수출지역을 다변화하면서 수출 물량은 크게 늘어날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값싼 중국제 자동차들이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자동차업체들마저 저가 출혈 경쟁에 가세하고 있는 움직임이어서 현 수출가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에서 환율 추가하락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다.

한편 상대적으로 환율 영향을 덜 받는 업종들도 있다.

조선분야는 부가가치가 높고 선박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던 2004년을 전후로 수주된 선박들을 중심으로 건조 및 인도가 이뤄지면서 상반기에 비해 채산성이 좋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석유화학제품도 수출선 다변화와 중국으로의 수출 확대 등에 힘입어 양호한 실적을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