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불허 결정으로 컬럼비안케미컬즈코리아(CCK) 인수에 제동이 걸린 동양제철화학이 최악의 경우 공정위의 시정명령 두 번째 안을 받아들여 포항 광양 등 기존 카본블랙 공장을 매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동양제철화학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숨겨져 있던 '돌발 변수' 때문.돌발 변수는 동양제철화학이 지난해 해외 금융회사로부터 컬럼비안케미컬즈(CCC) 인수자금을 빌리면서 계약서에 명시한 'CCC의 전 세계 17개 법인 중 1곳에서라도 지분 변동이 생기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에 따라 동양제철화학이 CCK를 인수하지 못할 경우 세계 3위 카본블랙 업체인 미국 CCC 인수까지 무산되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4일 동양제철화학이 신청한 CCC 기업결합심사에서 "동양제철화학이 CCK를 인수하면 국내 카본블랙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60%를 넘기 때문에 1년 내에 CCK 지분 전량을 매각하거나 포항과 광양에 있는 기존 공장 중 한 곳을 매각하라"는 시정 명령을 내렸었다.

◆돌발변수에 발목 잡혀

동양제철화학 고위 임원은 "3억달러가량의 인수자금을 빌리면서 계약서에 한 개 법인이라도 지분 변동이 생기면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단 건 사실"이라고 4일 밝혔다.

CCK는 CCC의 한국 법인으로 동양제철화학이 올해 초 CCC를 인수하면서 자동으로 인수하게 된 회사.CCC의 17개 법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동양제철화학이 공정위의 시정명령 첫 번째 안대로 CCK의 지분을 팔면 차입계약서에 따라 인수자금을 빌릴 수 없게 된다.

이 임원은 "현재로선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일 수 없어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며 "최악의 경우 대법원에서도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다면 기존 공장을 팔아서라도 CCC 인수를 성사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엇갈리는 주장

동양제철화학은 "금융회사와의 계약 문제로 M&A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공정위에 충분히 설명했는 데도 조건부 불허 결정을 내린 건 글로벌 경영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동양제철화학측이 계약서에 단서 조항을 넣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M&A를 할 경우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한 절차인데 심사 결과와 상관없이 미리 단서 조항을 삽입하고 '이런 문제가 있으니 무조건 결합을 승인해 달라'는 건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

지철호 공정위 기업결합팀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는 동양제철화학의 입장을 반영,두 가지 선택권을 준 것"이라며 "공정위는 사실상 CCC 인수를 승인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지 팀장은 "채권은행과의 계약 내용은 공정위가 고려할 대상이 아니며 돈을 빌린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해선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M&A와 기업결합심사

재계가 이번 사건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건 국내 기업이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해외 기업을 인수할 경우 언제든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 관련 전문가들은 "글로벌 M&A는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렇다고 공정위가 무조건 기업결합을 승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M&A를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공정위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지만 결국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설명이다.

신광식 연세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지금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임원들이 담합 혐의로 미국에서 징역을 살고 한국 공정위가 마이크로소프트 미국 본사의 끼워팔기에 대해 제재를 할 수 있는 시대"라며 "이는 시장이 세계화되면서 각국의 경쟁당국이 외국 기업들이 자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