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균형발전(Balanced Development).'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핀란드 정부가 내놓은 미래보고서다. 핀란드 정부는 경제위기를 겪은 직후인 1993년부터 미래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의회에 제출한다. 흥미롭게도 '2015 균형발전' 보고서의 초점은 지역개발이다. 의회 미래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몇 가지 주문을 했는데 그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중앙정부 정책의 일관성은 각 부처의 이해관계 충돌보다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 물론 지역의 자발성은 기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중앙정부가 벌여왔던 지역진흥사업에 비판을 가했다. 부산 신발산업, 대구 섬유산업, 광주 광산업, 경남 기계산업 등 4대 지역전략산업과 그외 9개 지역 전략산업들이 말만 '전략'이지 엉망이란 얘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략산업의 발전은 고사하고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게 생겼다는 게 KDI 결론이다.

따지고 보면 기획예산처는 물론이고 산업자원부 등 지역산업에 발을 걸치고 있는 중앙부처들, 참여정부 들어 등장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그리고 지방정부 모두가 공범(共犯)들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선진국을 벤치마킹한다며 성공조건들을 그렇게 강조하더니만 정작 우리는 실패의 조건들만 모조리 닮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그렇다. 정책의 일관성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부처마다 지역 사업을 벌이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이로 인해 비효율성이 발생해도 조정능력이 사실상 없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도 또 하나의 옥상옥(屋上屋)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지역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정치적 잠금현상(political lock-in)도 빼놓기 어렵다. 전략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배려가 앞선 경우도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사업은 발을 빼기 어렵고,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되고 만다.

첨단산업에 대한 환상(high-tech fantasy)도 큰 문제다. 모든 지역이 첨단산업과 실리콘밸리를 외친다고 성공할리 만무하다. 어떤 지역들은 차라리 전통산업을 고도화하는 게 더 나았을지 모른다.

지역마다 사정이 다른데도 중앙정부는 모든 지역에 하나의 옷(one-size-fits-all)을 입히려 했다. 표준모델을 강요하고,정책수단도 천편일률적이다. 지자체 주도는 사실상 말뿐이다.

정부는 '혁신'을 강조하지만 아무리 혁신이 요구된다고 해도 수용능력이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지역들도 있다. 이른바 혁신의 패러독스(innovation paradox)다. 그런 지역은 그런 지역대로 다른 발전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도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이를 간과했다.

어떤 지역도 완벽한 인프라를 갖추기는 어렵다. 개방과 협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그러나 적지않은 지역이 사회주의식 자기완결적 시스템(self-sufficient system)에 집착했다. 산업활동은 행정구역 경계를 넘나드는데도 정책은 행정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패한 지역산업들은 모두 그런 결과들이다. 민선 4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예외없이 취임식에서 '첨단산업''신성장동력'을 말했다. 이제는 구름 잡는 얘기 말고 손에 잡히는 지역발전을 정말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