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현명한 판단..북, 민족공조 강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에 참석중인 남북 대표단은 회담 이틀째인 12일 오전 누리마루APEC하우스에서 열린 전체회의에 앞서 전날 태풍과 관련해 화제에 올랐던 '외부 재앙'을 놓고 다시 팽팽한 갑론을박을 펼쳤다.

양측 모두 '미사일'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채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말을 되도록 삼가는 등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입장차와 함께미묘한 신경전도 감지됐다.

특히 남측은 북측이 지금의 국제정세를 오판하지 말고 '현명한 판단'을 해줄 것을 수 차례 주문한 반면 북측은 외세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키우고 민족 공조를 갖춰야한다고 강조해 향후 회담 진행 방향과 분위기를 가늠케 했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장관이 "어렵지만 여러가지 얘기가 진지한 토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문을 열자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는 부산과 관련된 일제시대의 아픈 역사를 상기하며 민족 자주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권 단장은 "부산은 역사책에서 보면 한때 망국의 설움이 짙게 배인 땅으로 돼 있다.

정든 고향을 하직하고 타향살이 가는 우리 인민들이 타고가던 관부연락선 얘기도 들었다"며 "왜 이런 일이 빚어지는 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없기 때문이며 구체적으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권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지적했다.

미사일 발사 및 핵무기 개발의 정당성을 암시하는 듯한 표현도 있었다.

그는 "100여년 전에 조상들이 화승총이 없어 망국조약을 강요당해 우리 왕국에 왜군이 와서 난도질하고 판치는 비극이 재연됐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6.15시대에는 북과 남이 합쳐 우리민족 자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 과거의 아픔은 외부 못지 않게 내적인 이유에서 기인했다며 현명한 판단을 주문했다.

그는 "100여년 전 식민지 시작되기 전에 재앙이 외부에서 왔지만 (이를) 끌어들인 것은 우리 내부의 분열과 현명치 못한 판단"이라며 "재앙을 사전에 예방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고 항상 현명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장관은 전체회의 진행을 위해 취재진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했지만 권 단장이 이례적으로 이를 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권 단장은 "현명한 판단도 중요한데 외부에서 오는 재앙이 우리 민족 내에 발을 붙일 자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자신의 논리를 재강조하면서도 "이 장관 선생의 말이 맞는데 보충적으로 이게 합쳐지면 만점짜리"라고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이 장관도 "외부에서 오는 재앙을 단결해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북측 주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면서도 "하지만 재앙을 안에서 불러오지 않게 하는 현명한 판단을 강조한 것"이라고 가볍게 덧붙였다.

그는 "둘 다 관점을 갖고 얘기한 것으로 민족 안에서 많은 어려운 정세를 여기서 잘 풀어보자"고 말한 뒤 취재진을 내보내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갔다.

(부산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transi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