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輝昌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지난 1년 동안 일본에서 안식년(安息年)을 보내면서 일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했다.

과연 일본을 이렇게 경제대국으로 만든 핵심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리고 일본은 이러한 지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가.

일본경제가 한창 떠오르던 1980년대 미국의 많은 경영학자들이 일본식 경영에 대해 연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식 경영이 창의성은 없고 모방을 잘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은 남의 것을 그대로 모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일본의 세계화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 역사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쇄국정책을 하던 도쿠가와 막부는 1634년 나가사키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섬을 만들어 네덜란드인을 집단 거주시킨다.

인공섬을 만든 이유는 일반 국민과의 직접 접촉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 상인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종교를 포교할 목적이 있다고 하여 배제했다.

당시 개국의 기로에 서있던 일본은 개국은 하되 철저하게 일본식으로 하겠다고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외국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일반 대중과는 격리시킨 채 필요한 것만 선택적으로 배워 자기 것을 개선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식 세계화 전략은 '모방'이 아니라 '개선'이다.

이 두 단어가 비슷해 보이지만 경영학적으로 상당히 다른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다.

모방은 새로운 것이 좋을 듯하면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인데,개선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기존의 틀에 맞을 때만 취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기독교의 전래이다.

기독교가 아무리 새롭고 좋은 면이 있더라도 일본의 전통문화에 잘 맞지 않으므로 일본은 기독교를 배척(排斥)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도 기독교를 탄압했지만 해방 후에는 종교자유원칙에 따라 기독교가 급속도로 번창하게 됐는데 일본은 지금도 기독교 세력이 미미하다.

일본은 남의 것을 철저하게 연구한 후 받아들인다.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그들 특유의 장인정신을 살려 그것을 한 차원 위로 개선시킨다.

서양으로부터 기술을 습득한 일본은 보통 한 세대인 30∼40년 후에는 서양기술보다 앞서게 된다.

섬유·전기전자·자동차 기술 등이 그러했다.

따라서 일본의 핵심역량은 '장인(匠人) 정신에 기초한 개선'인데 이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일본의 문화적 전통인 '집단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해서 일본말로 '와(和)'라고 표현되는 '화합'을 중시한다.

중요한 회의를 할 때도 특별히 튀는 언행을 우려해 회의 전에 미리 대체적인 합의를 보고 회의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집단주의 하에서는 집단의 안정을 해칠지도 모르는 급격한 개혁보다는 차선책으로 점진적인 개선을 택하게 된다.

또한 남을 간섭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만 열심히 하는 장인정신이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다른 구성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어떤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그것을 보호하려는 경제적 보호주의를 택하게 된다.

그러나 집단주의 장점인 '화합과 희생'이라는 이면에는 '비효율과 불공평'이 뒤따른다.

일본인 특유의 성실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한계가 있다.

이를 인식한 일본이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들의 정서가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 일본식 세계화 전략은 잘 맞지 않는다.

여러 분야에서 단순한 개선이 아닌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매우 진취적인 기업가 정신이 있다.

일본식 장인정신에 우리 특유의 개척정신을 가미한다면 훌륭한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