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병에서 따르자마자 '원 샷'을 해서는 안 된다.

식사하면서 천천히 마셔야 한다.

잔 속의 와인이 산소와 만나면서 훨씬 매력적인 맛을 내기 때문이다.

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단한 맛을 가지고 있다.

입 안에 와인을 머금고 있을 때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와인이 지닌 다양한 맛의 조화에서 비롯된다.

와인을 잘 마신다는 말은 결국 와인이 가진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뜻과 같다고 하겠다.

간혹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을 마실 때 꽃병처럼 생긴 것에 와인을 담아서 마시는 경우까지 있다.

신기하게도 그런 병에 든 와인을 마시노라면 맛이 더 좋게 생각되기도 한다.

이 꽃병처럼 생긴 것을 디캔터라고 부르고 와인을 디캔터에 따라 마시는 작업을 디캔팅이라고 부르는데 왜 디캔팅을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디캔팅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이유는 와인을 숨 쉬도록 만드는 데 있다.

일단 와인이 다른 병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향이 살아난다.

병 안에 갇혀 있을 때와 달리 향이 활개를 친다.

맛 또한 훨씬 부드러워져 마시기 편한 상태가 된다.

카베르네 소비뇽처럼 타닌(떫고 쓴 맛이 나는 성분)이 풍부한 와인은 산소와 결합하면서 입 안을 실크 같은 감촉으로 감싸 준다.

디캔팅의 또 다른 이유는 앙금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와인 병의 바닥에는 앙금이 가라앉을 수 있다.

와인을 여과하지 않고 병입하면 나타나곤 한다.

오래된 와인 병에서도 종종 앙금이 나온다.

레드 와인의 경우 병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짙은 보랏빛을 띠지만 시간이 지나고 숙성이 이뤄지면서 갈색으로 변한다.

앙금은 와인이 숙성해 색을 잃으면서 생겨난다.

앙금이 인체에 해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와인을 잔에 따랐을 때 혼탁해지고 입 안에서도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에 제거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와인이 오래됐다고 해서 다 디캔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30~40년 정도 지난 와인은 앙금이 생길 수 있지만 디캔팅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너무 오래된 와인은 그 구조 자체가 너무나 섬세해서 너무 많은 산소와 접촉하면 맛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 진열장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와인은 이런 디캔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와인 메이커들이 병입하기 전에 앙금을 제거하기도 하거니와 디캔팅 같은 절차가 없어도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도록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병 자체로 따라 마셨을 때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와인도 매우 많다.

하지만 디캔팅해서 더 좋은 맛을 내는 와인이 있다면 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