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중동지역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수입원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동산의 기준유가인 두바이유가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한 뒤 이틀 연속 최고치를 경신함에 따라 국내 산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환율, 원자재값 인상과 함께 사상 최고의 유가라는 악재에 직면한 기업들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와 비용을 줄이는 등 각종 고육책을 내놓으며 상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지만 고유가로 인한 전체적인 비용 상승을 막을 만한 뾰족한 대책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고유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화섬업계는 벤젠 등 석유화학제품의 수급 밸런스를 예의주시하면서 원자재 구매선을 다양화하고 에너지 절감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는 등 대응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유가 인상분이 화섬제품에 반영되는 데 3개월 이상 걸리지만 고유가가 장기화되면 전반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설비증설과 맞물린 공급과잉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고유가에 따른 원가 부담이 가중됨에 따라 일부 회사의 경우 영업이익이 작년의 절반 가까이로 떨어지는 등 고유가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2분기에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26.6% 증가한 2조2천725억원을 기록한 반면 영업이익은 43.9% 감소한 480억원으로, 상반기 전체로 볼 때 영업익이 사실상 반토막 났다.

항공사들도 연료비 비중이 매출원가의 2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유가상승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항공사들은 최근 유가 고공행진에 대처하기 위해 비수익 노선 폐지 및 감축, 유류 사용을 최소화하는 항공기 경제운항 시행 등 비상경영 대책을 지속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미 유가가 오를대로 올라 5월부터 유류할증료가 최고 수준으로 인상됐기 때문에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항공업계로선 큰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통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대한항공은 연간 300억원, 아시아나는 15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미 고유가에 대비하기 위해 북극항로 운행 등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거나 운영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런 대책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면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환경과 노조의 파업으로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세계적으로 자동차 구입 수요가 줄어들 수 밖에 없어 고심하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고유가 사태와 관련해 연구, 생산, 판매 등 사업부문별로 급하지 않은 투자와 지출을 자제하고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는 등 내핍경영을 펼치고 있다.

유가에 비교적 영향을 덜받는 전자 업종도 고유가로 인해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의 경우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LCD, 휴대전화 등을 항공편으로 수출하고 있는 데 고유가에 따른 항공 화물운임 인상이 원가상승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고유가가 지속됨에 따라 수출물량 중 선박으로 돌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고 있지만 고유가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제품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허덕이고 있는 건설업계도 유가 상승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등을 비롯한 주요 자재값과 물류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택경기가 하락하고 신규 수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유가로 인한 자재값 상승까지 겹치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