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레바논 내 헤즈볼라(시아파 민병조직)간 무력 충돌이 엿새째로 접어든 17일 민간인 희생자가 200명을 넘어선 가운데 미국 유럽은 물론 호주 필리핀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각국 정부에도 자국민 탈출 비상령이 떨어졌다.

전날 헤즈볼라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을 예고한 데 이어 이날 새벽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북단 압데항 등을 맹공습하면서 이 지역의 불안감이 고조되자 각국이 관광객과 기업인 등 자국민을 안전한 이웃 국가로 대피시키는 '또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호주 정부는 레바논에 남아 있는 관광객이 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들을 최대한 빨리 대피시키는 방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알렉산더 도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이들을 버스로 시리아나 배를 이용해 키프로스로 이동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이들을 안전한 방법으로 탈출시키는 것 자체가 여의치 않아 발만 구르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레바논의 자국 근로자 3만명을 피신시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주 레바논 필리핀 대사관은 베이루트 북부의 한 성당에 긴급피난센터를 설치,고용주들이 내팽개친 근로자들의 안전한 탈출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남부 레바논에 머물고 있는 자국민들에게 즉시 그곳에서 벗어나라는 대피령을 발표했다.

뉴질랜드는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약 30명의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해군 헬기를 이용,우선 21명의 자국민을 키프로스로 대피시켰다. 레바논에 머물고 있는 2만5000명의 미국인 중 15% 정도를 대피시킬 방침이다. 프랑스도 1300명을 태울수 있는 여객선을 즉각 보냈다.

한국 정부도 16일 오전(현지시간) 레바논의 교민과 주재원 등 36명을 시리아로 이동시켰다.

이영호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장은 "현재 한국인은 24명만 남아 있다"며 "이들 중 대부분은 대사관 직원들이고 한국전력의 필수 요원 2명,현지인과 결혼한 교포 등 잔류를 희망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36명 중 32명은 요르단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중재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정치고문인 비자이 남비아르가 이끄는 5명의 유엔 중재단이 베이루트에 도착,헤즈볼라측에 이스라엘 병사들의 석방을 촉구했고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양측에 민간인 보호와 사회기반시설 파괴 중단을 요구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