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동원론'이 또 다시 정치권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어려운 경기를 살리고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국민연금이 적극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5·31 지방선거에 참패한 여당이 발굴한 민심 수습책 가운데 하나다.

이런 주문은 2004년에도 있었다. 그 해 6·5 재보선 패배 직후 집권여당과 청와대는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한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연금 동원론을 제기했었다.

선거에서 지고난 뒤 연금에 손을 대서라도 민심을 추스리겠다는 여당의 '구습'은 예나,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고개 드는 국민연금 동원론

올해는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국민연금 동원론을 먼저 거론하고 나섰다.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은 5·31 지방선거에 참패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경제정책의 대전환을 강조하며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임대형 민자사업(BTL) 등에 국민연금의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며 국민연금 동원론을 꺼내들었다.

여당은 또 지난 15일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확정하기 위한 당·정 협의회 자리에서도 "국공립 보육시설을 늘리는 데 국민연금 등의 재원을 활용키로 했다"며 연금 동원을 정부와 이미 합의한 것처럼 언급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국민연금 사용처 논란이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 직후 여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민심 수습용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 "립서비스는 그만"

반응은 즉각 나타나고 있다. 참여연대는 강 의장이 국민연금을 언급한 이튿날(7월11일) 성명서를 내고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필요에 따라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이 아니다"며 "열린우리당은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해 국민들을 현혹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한 연금 전문가는 "여당이 선거에서 지면 연금이 경기부양용으로 거론되기 시작한다"며 "2004년 6·5 재보선에서 여당이 참패했을 때도 당·정·청은 경기부양을 위해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연금의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종용했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알토란 같은 국민연금은 지켜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제 와서는 열린우리당 의장 입장에서 국민연금 동원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의장은 지난달 19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들의 동의 아래 KT나 포스코 등 외국인 지분이 많은 국내 대표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의 지분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던 2004년 당시에는 국민연금 활용론을 제기하던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정면으로 공박,두 사람이 한동안 공식 회의에서조차 얼굴을 외면하는 일까지 있었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이 아무나 수저를 올려놓을 수 있는 '주인 없는 돈'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