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고향으로 불러들이는 능란한 외교,법인세율을 유럽 최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개혁안 제출.' 작년 11월부터 유럽 최대 경제대국을 이끌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대한 이 같은 외부의 관심과는 달리 내부의 평가는 싸늘했다.

지난 17일 오후 7시 프랑크푸르트역 광장 앞.쇼핑 중심지인 이곳에선 '세일' 문구가 나붙은 상점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계절 상품이 많은 여성 의류점 중에선 70%까지 '폭탄 세일'을 하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손님은 거의 없었다.

점원 자데트 도다크씨는 "내년부터 부가가치세가 오르면 손님 구경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노상 카페에서 만난 회사원 게리트 테르슈티게씨는 "경기를 살리려면 기업들의 과도한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데 바깥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질적으론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푸념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포르자가 이달 초 2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가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연정을 이끌고 있는 집권 기민(CDU).기사당(CSU)연합의 지지율 역시 지난달 말보다 1%포인트 하락한 32%로 출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인기 하락의 원인은 메르켈 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인 3대 개혁 모두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정부가 명목 법인세율을 38.7%에서 2008년부터 서유럽국가 중 가장 낮은 29.2%로 인하키로 한데 대해 재계가 시큰둥하고 있다. 법인세율을 인하키로 하면서 세금을 매기는 기준인 과세표준을 대폭 확대하려 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과세표준 확대를 감안하면 실질 법인세율은 36%에서 32~34%로 소폭 낮아질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소매상들은 내년부터 부가가치세를 16%에서 19%로 인상키로 한데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선 전 국민의 99%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N-TV 설문)까지 나왔다.

건강보험은 내년에만 70억유로(약 8조5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수술이 시급한 상황.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르켈 정부는 내년부터 노-사 양측의 분담금을 0.5%포인트씩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좌파 성향 정치인들은 대안으로 세금 인상을 외치는 반면 야당인 자민당(FDP)과 재계는 메르켈 총리가 "과도한 임금외 비용을 줄이겠다"던 총선 공약을 어겼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루돌프 코르테 뒤스부르크대 정치학 교수는 "현 정부의 개혁은 땜질식 처방"이라고 비꼬았다.

그나마 지난달 실업률이 10.9%로 전달보다 0.1%포인트 감소하는 등 일자리 창출이 이뤄지고 있는 점이 메르켈 정부의 인기를 받치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 개혁안들을 슬그머니 처리한 메르켈 정부가 국민들의 따가운 비판을 어떻게 무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프랑크푸르트·쾰른(독일)=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