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변한 게 아니라 기업과 시장이 변한 것이죠."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며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20일 자신이 '친기업적으로' 변했다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장 교수는 이날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과 윤리경영'을 주제로 강연한 뒤 기자와 만나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내가 처음 문제를 제기했던 199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기 때문에 더 이상 참여연대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윤리경영도 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지 경제 정의나 윤리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기업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과거와는 달라 잘못한 기업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며 "요즘은 주식을 갖고 참여연대를 찾는 소액주주들에게 '(당신이) 알아서 잘 할 수 있다'며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연대는 이제 정책적인 조언에 집중할 것"이라며 참여연대의 역할이 줄어들 것임을 시사했다.

장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경영권을 유지하려면 주식을 많이 갖고 있거나 경영을 잘 하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우 왕관의 보석과 같은 삼성전자가 가장 대표적인 기업인데 3.5%의 지분만으로 오너와 같은 경영권 행사를 용인하는 것은 대단한 경영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 자본은 무조건 투기세력이라는 인식에 대해 장 교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우리 기업을 지키려고 한다면 우리가 주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수백조원이 부동산 시장에 들어가 있으면서 미래 성장을 담보할 자본시장에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게 문제라는 것.그는 "국민연금이 한국 기업 주식에 투자하면 큰일날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SK와 소버린의 경영권 분쟁 당시 상당수 채권은행들은 주식이 조금 오르니까 주식을 모두 팔아버렸다"며 "우리 기업에 투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우리 기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기적 동기를 갖고 개인이든 기업이든 경제를 움직여야 공적인 이익을 앞세우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게 시장경제"라며 "사유재산을 보호해주고 누구든지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모든 재산을 보호받고 싶어하며 강한 이기적 동인을 유발시켜 경제를 움직이는 게 시장경제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경제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경쟁인데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의 치열한 경쟁에 속해 있지 않은 조직들이 많다"며 "인적자본을 공급하는 대학도 경쟁을 해야 경쟁력이 생기는데 우리나라 대학 중에는 아시아에서 알아주는 대학도 없다"고 꼬집었다.

장 교수는 "변화하는 환경에서 남을 앞서 가려면 세계적 기준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귀포=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