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디셔널 캐주얼(유행에 관계없이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는 정통 캐주얼)'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꼽히는 폴로가 '1위' 자리를 지키지 못한 나라가 있다.

바로 '토종' 빈폴이 버티고 있는 한국이다.

1989년 폴로가 득세하고 있던 국내 트래디셔널 캐주얼 시장에 제일모직은 '빈폴'로 도전장을 던졌다.

그때 평사원으로 빈폴 론칭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했던 이진성 빈폴 전략팀장은 "제일모직은 갤럭시 등 정장류에는 자신이 있었지만,캐주얼 의류에 대해서는 전혀 노하우가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렇다 보니 제일모직 디자인실과 생산팀은 빈폴 론칭 준비로 매일 밤을 샜다.

디자이너들은 경쟁 제품인 폴로 티셔츠를 거의 찢어발기다시피 할 정도로 자세히 분석했고,생산팀은 경쟁 제품을 가져다 원단 1㎡가 몇 올의 실로 이뤄졌는지까지 연구했다.

이런 모진 산고 끝에 빈폴은 태어났다.

하지만 이미 탄탄한 명성을 쌓아 놓은 폴로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서울 강남 일대 부유층 자제들은 순수 국산 브랜드인 빈폴을 가리켜 '빈티나는 폴로'라고 비웃기 일쑤였다.

이런 수모를 넘어서는 길은 오로지 품질로 앞서는 것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어느 브랜드를 막론하고 단색의 캐주얼 티셔츠는 여름철 땀이 배면 외관이 얼룩덜룩해지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빈폴은 이를 경쟁사에 앞서 해결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생산팀은 원단과 염료를 바꿔가며 샘플 생산을 계속했다.

빈폴팀 남자직원들은 샘플이 나올 때마다 그걸 입고 사우나에 들어가 한바탕 땀을 흘리고 회사로 돌아오곤 했다.

이런 노력 끝에 결국 땀에 젖어도 얼룩이 지지 않는 티셔츠를 한 발 앞서 개발할 수 있었다.

스웨터의 경우에는 빨고 난 뒤 보푸라기가 생기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원사를 과감하게 최고급으로 교체했다.

1994년에는 과감하게 '노 세일 정책'도 채택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의 선언이었으며,명품화 전략의 신호탄이었다.

1996년 빈폴은 처음으로 소비자만족지수(한국갤럽 한국능률협회 공동 조사)에서 폴로를 앞질렀다.

2001년에는 매출로도 트래디셔널 캐주얼 분야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

2002년 국내에서 팔리는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연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3000억원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