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달랐다.

아니 현명했다.

과도하게 임금을 올려달라고 떼쓰는 대신 정년 연장이라는 절충점을 도출해 '무파업·고용 안정·기술 단절 방지'라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두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무리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장기 파업을 벌여 회사에 1조원이 넘는 매출 손실을 안기거나,협상 당사자를 제쳐 놓고 제3자의 본사를 불법 점거까지 했던 다른 노조의 최근 행태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생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커다란 마찰 없이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낸 현대중공업 노조의 이야기다.

잠정 합의안이 이번 주 중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가결되면 과거 '골리앗 크레인 파업'의 대명사로 통했던 현대중공업은 1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쟁의 결의 없이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지난 21일 17차 교섭에서 사측이 1차로 제시했던 기본급 대비 3.95%(7만3550원)의 임금 인상안을 수용,같은 울산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현대차 노조가 올해 기본급 대비 9.1%(12만5524원)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이뤘다.

이번 현대중공업 노사 잠정 합의안을 살펴보면 임금 인상률보다 단체협상 내용이 눈에 띈다.

정년 연장이 그것이다.

노사는 종전의 만57세에서 58세로 정년을 1년 연장키로 했다.

조선업계에서는 처음이다.

정년 연장안에 대해 당초 사측은 수용 불가를 주장했으나 노조가 임금협상에서 과감하게 양보하자 수용쪽으로 방향을 틀어 화답했다는 후문이다.

지나친 임금 인상 요구를 앞세워 노사관계를 공멸의 벼랑 끝까지 몰아가지 않고 고용 안정을 선택하는 노조의 지혜에 회사측이 한발 양보한 것이다.

이는 회사측도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라는 이해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중공업은 2001년부터 숙련된 기술 인력의 퇴직이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기술 공백과 단절을 우려해 왔다.

이 때문에 올해의 경우 정년 퇴직자 687명 중 23%인 160명을 재고용하는 등 묘안을 짜내던 터였다.

현대중공업의 노사 잠정 합의안이 한층 돋보이는 부분은 또 있다.

정년 연장이 청년 실업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해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에 달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 도입 등 고령화 대책 관련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협의한다'고 명시한 조항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년 연장을 매개로 한 서로의 양보가 결국 무파업,고용 안정,기술 단절 방지라는 일석삼조의 윈-윈(win-win)을 낳을 것이므로 잠정 합의안이 무난히 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철강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보다 한 발 앞서 이 같은 노사 윈-윈 합의가 이뤄졌다.

동국제강은 지난 3월 올해 임단협에서 정년을 만 55세에서 56세로 1년 늘리기로 노사가 합의,고용 안정과 기술 단절 방지를 담보했다.

역시 1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었다.

이 같은 근로자의 정년 연장이 노사협상의 새로운 해법으로 산업계에 확산될 조짐이다.

두산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의 노조도 올해 정년 연장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년이 만 56세인 두산중공업 노조는 2년은 기본 연장,본인이 요구하면 2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4년 연장안을 사측에 제시해 놓고 있다.

지난 20일 기본급 월 10만3000원 인상을 내걸고 쟁의를 결의한 대우조선 노조는 정년을 만 57세에서 58세로 1년 연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철강과 조선업처럼 기술인력 확보가 어려운 일부 업종의 경우 정년 연장이 노사 모두에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그러나 정년 연장이 신규 고용의 폭을 제한할 수도 있는 만큼 임금피크제 등 다양한 대안으로 이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