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명을 사칭한 역사적인 인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안용복이다.

경상좌수영의 능로군(노 젓는 수군)에 불과했던 그는 일본 막부로부터 을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이라는 각서를 받아낸다.

그러나 귀국길에 대마도주에게 문서를 강탈당한다.

3년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관명에도 없는 감세장(監稅將)으로 행세하며 각서를 다시 받아내지만 귀국해서는 관리를 사칭한 죄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이제 후손들은 홀로 싸워 독도를 지켜낸 그에게 '장군'이란 칭호를 붙여 기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유당 시절의 '가짜 이강석'사건은 실소를 금치 못한다.

이강석은 당시 실세였던 이기붕의 아들이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었는데 강성병이라는 상습사기꾼이 양아들을 사칭하며 전국을 돌아다닌 것이다.

그는 고위관리들과 재벌들을 만나 "아버지의 명을 받아 암행어사로 나섰으니 나를 보았다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한 뒤 향응과 뇌물을 챙겼다.

그의 사기행각은 한 민완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막을 내렸다.

아직도 청와대와 고위직을 사칭하는 일들이 빈번하다고 한다.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친인척인데…" 또는 "사정팀 국장인데…"하며 거드름을 피우면 거개가 말려든다는 것이다.

멋대로 만든 비서실 명함과 청와대 기념품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기념소품들도 행세용으로 쓰인다고 하니,어수룩한 구석은 세월이 흘러도 존재하게 마련인가 보다.

오죽했으면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이 피해방지요령을 알리면서 민원전화를 공개했을까 싶다.

소위 힘센 기관의 직원을 가장하며 접근하는 현장엔 으레 구린내가 나게 마련이다.

당한 사례들을 보면 합법하지 못하거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에 속는 사람들 중에는 양(羊)고기를 걸어 놓고 개(狗)고기를 파는 사기한들도 없지 않다.

고위층을 사칭하고 빙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음지를 쫓아 다닌다.

투명한 사회만이 분명 이들의 천적일 게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