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요사이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정책당국의 시각이 너무 태평스러운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는다.

시중의 경기가 좋다 나쁘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한국경제가 지속적인 성장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과 대응이 지나치게 느긋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潛在成長率)이 4%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게 한국은행 총재의 얘기다.

물론 정부는 5%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다수 민간연구기관들이 4%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고,또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잠재성장률이란 물가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대성장률이란 점에서 보면 성장속도에 대한 평가기준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때문에 잠재성장률이 4%대로 주저앉은 게 맞다면 그 이상 성장을 달성하면 물가불안이 야기될 소지가 크다.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5% 이상 성장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권오규 부총리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이 왜 떨어지는가를 생각해 보면 정부가 낙관적으로 생각해야 할 계제(階梯)는 결코 아니다.

우선 성장잠재력이라는 개념을 함께 생각해 보자.주어진 부존자원과 활용도,수요기반,그리고 기술발전 등을 고려해 얻어낼 수 있는 공급측면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

말하자면 기술개발이나 생산성 향상,노동인력 및 자본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잠재성장률과 성장잠재력이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실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산요소(生産要素)들을 최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정책이나 제도 탓이다.

예컨대 시중의 유동성은 풍부하고,기업들의 자금사정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 여유자금들이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부동산 등으로 몰려다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책실패탓 아닌가.

대기업 투자규제 완화는 왜 그렇게 주저하는가.

설비투자가 늘어나면 곧바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성장산업으로 서비스산업 육성(育成)을 들고 나온 것은 정부였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잘 추진되고 있는가.

온갖 규제로 인해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그대로 놔두고 서비스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구호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잠재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지금 정도의 성장속도가 최선이라는 것은 맞지 않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일이 먼저다.

경제정책은 당장의 현안에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래의 국민생활 향상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한국경제의 3가지 시나리오'를 보면 향후 10년 동안 잠재성장률이 2.6%로 낮아지면 경제규모나 소득수준이 지금보다 퇴보하게 되고,4.1%를 유지하면 현상태에서 답보를 면치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6.3%는 돼야 '국내총생산 세계 10위,1인당 국민소득 세계 26위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며칠전 한국은행 주최로 연구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성장잠재력 하락을 걱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정부가 고령사회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5년 후에는 잠재성장률이 1%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경제의 퇴보가 내다보이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긴장하는 기색은 없고,생산주체인 기업들의 기를 살려주기는커녕 닦달에 여념이 없다.

투자의욕을 부추길 규제개혁에는 그토록 인색하기 짝이 없으니 그 속내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