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英凡 < 한성대 교수·경제학 >

전문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농성 사태가 9일 만에 종료됐다.

다른 사태와는 달리 인명 피해없이 비교적 조속히 마무리돼 다행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재 및 미래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우울한 사건이었다.

2500명에 달하는 포항 전문건설노조 노조원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고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지만 노사관계 전문가, 심지어 일반 국민들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혹자가 '제5의 권력'이라고 명명한 우리나라 노조의 불법 파업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과 원칙을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끝까지 고수하고 노조의 협상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포스코 경영진, 불법행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과거와는 달리 연일 노조규탄대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현한 포항 시민들, 그리고 뒤늦게나마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없는 타협을 주선하지 않겠다고 언명(言明)한 정부 등으로 인해 이전의 사태와는 달리 포항건설노조는 백기 투항(投降)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법파업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선언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전환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농성 해제 후 현장에서 압수된 품목을 보면 포항건설노조는 3억여원에 달하는 라면 생수 등의 비상식량을 준비해 장기전에 대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용직 건설근로자로 구성된 건설노조가 이처럼 막대한 물량의 비상식량을 마련할 정도로 자금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노조 전임자뿐만 아니라 노조사무실 등 노조활동에 필요한 기본 경비를 사용자가 부담하는 현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관행 때문이다.

포스코 불법 농성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물어 농성지도부 수십여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보이지만 파업지도부는 구속 후, 그리고 그 이후 복직될 때까지 기본적인 생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조기금으로부터 생계자금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불법 농성에 따른 피해에 대해 건설노조뿐 아니라 파업지도부에 대해서도 민사상의 배상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과거 노총과 경총은 불법파업에 따른 과도한 민사상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고 참여정부 초기 제안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도 손배·가압류가 남용되지 않도록 신원보증법 민사집행법 등 관련법률을 개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내년에 시행될 예정인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법도 노조 활동 위축을 이유로 일정규모 노조에 대해 한시적으로 법 집행을 유예하자는 주장이 정치권 등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 주된 이유는 노조가 불법파업에 따른 법적, 재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노사관계 관행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없고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는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공허(空虛)한 정부당국의 말 뿐인 것이 현실이다.

하청업체의 근로조건 개선에는 상생의 차원에서 하청업체를 배려하는 원청업체의 경영방침이 중요하다는 포항건설노조의 주장은 일리가 있으나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의 처우 개선은 이번과 같은 불법점거가 아니라 제대로 된 비정규직법을 제정,시행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은 비정규직법의 국회통과를 무산시킨바 있다.

아무쪼록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법을 예정대로 시행하고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비정규직법을 조속히 통과시키는 것만이 불법파업의 고리를 끊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