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32만명에 달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필수·상시 업무 종사자들을 우선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하자 재계는 이 문제가 향후 노사 갈등과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다.

기업들은 특히 포항지역 전문건설 노조원들의 포스코 본사 건물 불법 점거·농성 사건이 대규모 구속 사태로 마무리된 직후 이 같은 방안이 나왔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이 이 시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밝힌다는 게 어떤 파장을 불러올까 고민해 봤는지 의문스럽다"며 다소 의아해하고 있다.

이승철 전경련 경제조사본부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 포스코 사태처럼 전투적이고 살인적인 노사 관계가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당정의 결정이 과연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든다"며 "앞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노사 갈등을 빚는 기업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상당수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것은 곧 공무원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 아니냐"며 "정부도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서 고용 형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무는 "(이번 당정 합의는) 당장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는 않겠지만 정부가 앞장 서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민간 기업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는 일종의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10대 기업의 한 관계자는 "당장은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노사 협상 테이블에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노조의 명분을 더욱 강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곤혹감을 나타냈다.

또 다른 기업의 인사담당 중역은 "정규직 전환 문제가 노사 갈등의 불씨가 될 경우 차라리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비정규직의) 업무 자체를 떼어내 외부에 용역을 줄 계획"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조는 올해 2년 이상 근속한 사무직 여직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회사측과 갈등을 빚고 있고 또 다른 기업 노조는 △비정규직 채용 금지 △하청업체 근로자 고용 보장 등 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내용들을 들고 나오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또 이날 당정의 결정이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보호 3법안 처리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가 2년을 초과해 근무했을 때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 관련 3법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에 이견은 없지만 민주노동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재계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번 공공부문에 대한 당정의 결정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민노당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기업 경영에 더 불리한 내용으로 개정될 수도 있다는 것이 재계의 걱정이다.

조일훈·이태명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