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의 대형 빌라 냉동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미스터리' 사건의 실체가 여전히 안개속이다.

한여름에 발생한 엽기적인 사건이어서 국민적 시선이 쏠리고 있지만 누가, 어디서, 어떤 이유로, 아기를 낳은 뒤 굳이 휴가 중인 프랑스인 빌라의 냉동고에 넣었을까 하는 의문점은 좀체 속시원히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검토 중인 인물은 빌라 주인인 프랑스인 C(40)씨와 C씨의 프랑스인 친구 P(48)씨, 필리핀인 가정부 L(40대 후반)씨, 이웃 주민이 C씨 집 앞에서 목격했다는 10대 백인소녀 등이다.

경찰은 이들 일부에 대해 심증을 갖고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찰 수사내용을 토대로 그려볼 수 있는 시나리오를 통해 이들의 연루 가능성을 짚어본다.

그러나 경찰이 현재까지 이들의 연루 가능성을 뒷받침해줄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고 이들이 핵심 용의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인권 등을 고려해 이하 내용은 말 그대로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 빌라주인 친구 P씨 = 사설경비업체의 기록을 보면 문제의 빌라 보안카드와 열쇠를 가진 사람 2명 중 유일한 출입자이다.

그러나 3일, 7일, 13일, 17일 등 4회에 걸쳐 출입한 그는 집안에 매회 5~6분 밖에 머물지 않았다.

보안카드를 해제하고 다시 잠금 상태로 돌리는데 그 정도밖에 안 걸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5분 동안 산모를 데리고 들어가 아기 둘을 낳고 냉동고에 집어 넣는다는 것은 출산 시간이 최소 1~2시간에서 최대 10시간 이상 걸린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P씨가 산모와 출산을 도와줄 보호자와 함께 집에 들어간 뒤 산모 등을 남겨 두고 혼자 `잠금' 장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비업체 기록상으로는 `잠금' 장치가 돼 있지만 산모가 며칠 간 머물면서 아기를 낳고 뒤처리를 한 뒤 P씨가 돌아오던 날 같이 나갔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5분 안에 출산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 출산이 이뤄졌다면 산모가 며칠 간 머물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빌라주인 C씨 = C씨는 택배로 배달된 냉동 간고등어를 보관하기 위해 냉동고를 열었다가 영아 시신 2구를 아래쪽 4~5번째 칸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라 한국인 회사동료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만약 C씨가 스스로 꾸민 일이라면 한국말이 서툴더라도 굳이 회사 동료에게까지 알린 뒤 그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C씨가 떠나기 전에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아기의 시신이 냉동돼 정확한 사망 시간이 나오지 않아 현재로서는 휴가를 떠나기 전에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C씨가 사전에 이번 사건을 알고 있었거나 아니면 C씨 몰래 그의 가족이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C씨가 회의참석차 휴가에서 잠시 돌아온 뒤인 18일 이후의 집 출입기록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의심을 품게 만드는 대목이다.

평소 C씨는 보안카드로 `잠금' 장치를 하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잠금이 해제된 상태에서는 열쇠만으로도 얼마든지 증거를 남기지 않고 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씨가 귀국한 뒤 C씨가 아는 상태에서 사건이 벌어졌거나 P씨 혹은 P씨로부터 열쇠를 넘겨 받은 누군가가 C씨가 출근한 틈을 노려 대담하게 범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경찰은 C씨에게서 뚜렷한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휴가 중인 그에게 26일 재출국을 허용했다.


◇ 필리핀인 가정부 L씨 = C씨는 6월 말 휴가를 떠나면서 "8월 말까지 돌아오지 않을 테니 굳이 일하러 나올 필요가 없다"고 L씨에게 말했다.

L씨는 아직 이름의 영어 철자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추적이 제대로 안되고 있지만 정황상 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L씨는 보안카드 기록상 C씨의 휴가기간 중 빌라에 출입한 기록이 없어 만약 연루됐다면 휴가 기간 전에 직접 아기를 낳았거나 다른 사람을 들여와 아기를 낳게 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 10대 백인소녀 = P씨와 원래 아는 사이였거나 P씨 아들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소녀가 임신한 뒤 P씨의 도움을 얻어 이 집에 들어와 아기를 낳았다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아니면 체격이 호리호리한 이 소녀가 아니라 소녀의 친구나 또래 소녀가 임신한 뒤 이 소녀의 소개로 C씨 집에서 아기를 낳았을 가능성도 있다.

보통 `영아 유기'는 성인이 아니라 철없는 10대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비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경찰을 이 소녀의 행방에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 집밖에서 출산 = 누군가 외부에서 아기를 낳은 뒤 집안으로 들어가 냉동고에 넣었을 수도 있다.

물론 경찰은 집에서 발견된 혈흔과 집에서 쓰던 수건이 아기를 감싸는데 사용된 점 등을 근거로 집에서 출산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훨씬 높게 보고 있다.

그러나 P씨가 출입했던 5분 사이에 출산이 이뤄졌을 리 만무하고 집안에서 발견된 혈흔이 밖에서 데려온 아기의 몸에서 나온 피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누군가가 아기를 외부에서 출산한 뒤 이 집의 냉동고에 넣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