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살인의 추억'이 아니라 '괴물'의 감독으로 불리고 싶네요."

27일 폭우를 뚫고 개봉일 최고 관객 기록을 경신하며 흥행 전선에 뛰어든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이 같은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물론 '살인의 추억'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왔죠. '괴물'을 만들면서 괴수 영화에 대한 심한 편견과 마주해야 했는데 그나마 '살인의 추억'을 연출한 감독이 만든다 해서 좀 다르게 봐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괴물'을 만들 수도 있었구요."

2003년 5월 '살인의 추억'을 내놓으며 당시 영화계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봉 감독은 이후 3년여 동안 불후의 명작인 '살인의 추억'과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그 순간들이 영광스러웠음은 물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나름대로 마음 고생도 있었다.

"실제 사건을 영화로 다룬다는 것은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영화화한다는 사실 자체가 관련자들에게 또다른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또 개봉 당시에는 네티즌들이 생각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반응했어요.

서명운동을 벌여 재수사를 촉구하기도 해 당황하기도 했죠. 그런 과정에서 혹시라도 피해자나 당시 수사관들을 찾아갈까봐 나름대로 걱정했습니다."

'살인의 추억'으로 단숨에 명감독 반열에 올라섰지만 영화의 소재가 워낙 가슴 아픈 미제 사건인 까닭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는 것.

"관련자들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사건을 영화가 또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까, 또 범인이 찾아올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그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 혹은 '훈장'이 '괴물'에게 바통을 넘겨주기를 바라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행히 '괴물'이 '살인의 추억' 못지않은 평가를 받은 데다 흥행에서는 그것을 넘어설 기세라 봉 감독의 바람은 곧 현실화 될 듯하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