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임 논설위원·YSK 대표 >

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되면 반 장관 개인에겐 영광이요,국가적으로도 '고립외교'에 몰린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전기(轉機)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사석에서 만난 유명환 외교부차관은 유엔총장직과 관련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낙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유 차관의 낙관적 근거는 다소 의외다.

왜냐하면 반 장관의 '숨겨진' 불어(佛語) 실력이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 차관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를 소개했다.

시라크 대통령에게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진출 지원을 요청하자 그는 직설적으로 화답(和答)하는 대신 "(불어를 하지 않는 사람과는 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내 여비서가 반 장관을 매우 좋아한다"는 간접화법으로 긍정적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고 소개했다.

반 장관에 대한 국제무대의 호감은 "반 장관이 1등을 했다"고 보도된 예비투표(straw poll)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투표는 모든 후보가 총망라된 게 아닐 뿐 아니라 각 후보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만을 묻는 것이어서 정작 모든 후보를 무대에 올려놓고 "한 사람만 고르라"고 할 때에도 반 장관이 1위를 차지할 것인지는 예단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무대의 분위기는 호의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 TV 카메라 앞에서 반 장관을 포옹까지 해가며 남다르게 반기는 제스처를 보여준 것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반 장관에 대한 호감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같은 '중국 쏠림'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미·중'이라는 대칭구도의 '미국 축'에 서 있는 일본은 떨떠름해 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사무총장 선출에 관한 한 일본이 큰 변수는 아니고 결국 가장 중요한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는데 노무현 정권 들어 냉랭해진 한·미관계가 아킬레스건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있은 6·25 종전 기념식에 참석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미군의 '지속적인 한국주둔'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는 미국 쪽 정서가 살아 있기를 기대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싱가포르의 고촉동 전 총리가 '의외의 후보(dark horse)'로 거론되지만 "지금은 내치(內治)에 몰두할 때"라는 싱가포르 국내주문 때문에 후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라트비아 등 발틱해 연안국들이 후보를 낼 수 있지만 거부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가 반대할 태세다.

유 차관은 오히려 터키 후보가 강력한 후보지만 "이번에는 아시아 차례"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또 유럽이 터키를 지원할 것 같으면서도 -역사적 구원(舊怨) 때문에- 속으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반 장관에겐 유리한 환경이다.

한국외교는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대일(對日)외교만 보더라도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무시전략이 제일'이라던 독도문제와 관련,노정권은 갑자기 태도를 바꿔 '내치(內治) 카드'로 활용함으로써 일본과의 관계를 경색시켰다.

한국은 또 핵,미사일,위폐와 그에 따른 북한 자산동결,북한 인권문제 등에서 '김정일 감싸기'에 앞장섬으로써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를 저버려 스스로 왕따를 자초했다.

국민들은 북한이 싫은 것이 아니라 무구한 주민을 탄압하는 김정일에게 끌려 다니며 자존심을 파손당하는 노정권에 속상해하고 있는 것이다.

반 장관의 유엔 진출을 계기로 그간의 좌파적 인사와 요인들을 제거하고 한·미동맹을 복원할 수 있는 외교라인을 전진배치시킨다면 '왕따 외교'는 쉽게 치유될 수 있다.

국민들과 국제무대 모두가 이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열쇠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이 쥐고 있다.

다만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을 뿐이다.

bjyang@leeinternation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