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정보사회의 도래는 기업들에 기회만 가져다준 게 아니다.

소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기업과 관련한 많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기회만큼이나 큰 리스크(위험)도 안게 됐다.

분식회계나 아동 착취,환경 파괴와 같은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기업 활동은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에 알려진다.

미국 엔론과 같이 최악의 경우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21세기의 경영 패러다임으로 떠오른 이유다.

지난 28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속가능 경영의 실천과 과제' 포럼은 이 같은 경영 환경 속에서 국내 기업들의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애드리안 페인 BAT그룹 CSR 총괄책임자,로버트 덴처 한국쉘 사장 등으로부터 해외 선진 기업들의 모범사례를 듣고 이병두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부사장,정관용 지속가능경영원 팀장,정동창 산업자원부 산업환경팀장이 한국 기업들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다.

주주만 신경써선 안돼

CSR의 핵심 키워드는 역시 이해관계자다.

과거에는 주주만 신경쓰면 됐지만 이제는 정부 소비자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외국 기업 CEO들은 이런 이해관계자를 적극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인 박사는 "BAT는 매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초청해 사회의 요구를 경청하고 이를 경영전략에 반영해 사회보고서를 내고 있다"며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이해관계자와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처 사장은 "쉘은 러시아 사할린 지역에 짓고 있는 액화천연가스 플랜트가 서태평양 귀신고래의 서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국제자연보호연맹에 과학조사 위원회를 소집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파이프 라인의 경로를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CSR는 비용이 아닌 투자

포럼 참석자들은 이 같은 CSR 활동은 단순히 리스크를 회피하는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라고 입을 모았다.

BAT그룹이 몸에 덜 해로운 담배를 개발하고 쉘이 청정에너지 개발에 나선 것도 단기적인 의미에서는 사회적 책임 경영의 일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라는 것.지속가능경영원 정관용 팀장은 "이 밖에도 CSR 활동을 통해 회사의 명성을 보호하고 종업원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도 투자"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의 현주소

산업자원부 정동창 팀장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세계 100대 지속가능 기업에 국내 기업은 한 곳도 들지 못했다.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우수한 기업만으로 구성하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지수(DJSI)에는 삼성SDI와 포스코 2곳만 포함돼 그나마 체면을 살렸다.

이병두 딜로이트 부사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회사에만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SRI)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CSR를 전략적으로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