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재계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한 데는 5·31 지방선거 및 7·26 재보선에서의 참패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다시 빠져드는 상황에서 기업 정책을 바꿔 경제를 살리지 않는 한 내년 대선도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경제계가 투자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가시적 조치를 결의해 준다면"(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가 각각의 사안에 대해 여당과는 다른 견해를 내세우고 있고,재계 역시 노력은 해보겠지만 전제조건 자체에 무리가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어 재계 요구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정부 "생각은 해보겠지만…"

김근태 의장의 "재계 요청사항들을 조건부로 수용할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 정부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정부와 여당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의 큰 방향이지만 개별 사안들에 대해선 좀 더 협의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우선 출총제 폐지에 대해 먼저 대안을 마련한 뒤 폐지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은 상태다.

여당의 '재계 요구 수용 가능'과는 내용이 다르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순환출자의 단계적 해소방안이 대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의 출총제보다 대안의 강도가 높아서는 안 된다는 재정경제부 입장과 달리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공정위는 특히 30일 '2006년도 소유지배구조 공개' 자료를 통해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는 크게 개선된 것이 없다"고 자체 진단했다.

적극적 경영권 방어책과 관련,재경부 관계자는 "지난 3월 초 KT&G 사태를 계기로 입장이 정리된 사안"이라고 말했다.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제도 등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추가대책 마련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설립 규제 등에 대해선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엽말단적인 문제이며 지역균형발전이 우선 도모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재계 "구체적 수치 제시 어렵다"

재계는 여당이 경제계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는 점 자체에 대해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특히 김 의장이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를 방문하고 재벌 총수까지도 만나겠다는 자세에 대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가시적 조치를 먼저 결의해 달라"는 김 의장의 요청엔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여당의 전향적 자세에 화답을 해야겠지만 노동계의 전투적 투쟁 행태가 여전하고 하반기 들어 경제가 꺾일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인데 어떻게 투자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투자활성화가 되지 않는 원인이 각종 규제에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폐지 또는 완화해 달라는 재계의 생각을 여당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선(先)규제완화 혹은 폐지→기업 투자 확대→고용창출→소비확대→경제회생 등의 선순환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여당이 요구하고 있는 △신입사원 등 신규채용 확대 △중소기업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배려 등은 기업 투자 활성화에 따른 경기회복의 결과물이지 조건으로 내세울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