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동일한 지역에서 같은 업종의 조합이나 연합회 설립이 가능해지고 사업조합의 업무 구역을 특정 지역으로 제한하는 규정도 폐지됐다.

또 실제로 활동하지 않는 조합을 퇴출시키는 '휴면조합' 제도가 도입됐다.

이는 지난 40여년간 '단체수의계약'을 근간으로 다져진 전국 단위의 '단일 업종 조합·연합회 체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것이다.

내년 이후 조합 '이합집산' 가시화

개정법에서 삭제된 복수 조합 설립 금지 조항은 2002년 법 개정시 신설한 것이다.

조합 간 과당 경쟁 등 중복 설립에 따른 부작용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기존 조합들은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복수 조합 설립 허용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결사 및 의사결정 자유권을 존중하고 경쟁체제를 통해 조합의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개정 논리에 물러섰다.

사실 2002년 이전에도 동일 업종에서 2개 이상의 조합이 경쟁을 벌이는 일은 드물었다.

단체수의계약 제도를 운영하는 데는 경쟁체제보다 단일조합 체제가 조합원사들에 유리하고 행정적으로도 편리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조합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단체수의계약이 내년부터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 전국조합 관계자는 "조합 운영에 불만이 있지만 단체수의계약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 마지못해 참여해온 조합원사들의 이탈이 내년 총회 시즌을 기점으로 가시화할 것"이라며 "특히 서울·수도권 중심의 조합 운영을 비판해온 지방업체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기존 조합 '활로 찾기' 안간힘

생존 위기에 몰린 기존 조합들은 공동구매,단체표준 인증,공동 브랜드 등 새로운 사업으로 활로를 모색 중이다.

특히 예전부터 단체수의계약 없이 공동구매와 전시회 개최(금형조합 공구조합),제품 인증(정수기조합) 등의 사업으로 자립 기반을 구축한 일부 조합들이 다른 조합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활로찾기가 쉽지는 않다.

공동구매 사업은 기존 유통업계와의 경쟁과 어음결제 관행으로 한계가 있고 공동 브랜드 사업도 성공 케이스를 찾기 힘들다.

단체표준 인증 사업을 단체수의계약의 대안으로 추진해온 전기조합 상업용조리기계조합 금속울타리조합 등도 최근 표준 인증 제품이 기술개발 제품 우선 구매 대상에서 제외됨에 따라 곤란을 겪고 있다.

또 대부분의 조합들이 경쟁입찰 참여 기업의 직접 생산 확인 업무 등 정부 위탁 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이 역시 뚜렷한 대안은 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기존 조합들의 위기 의식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중앙회도 공동 기술개발,공동 AS센터 설치 등 조합 신규 사업 지원 추진과 공동사업 지원기금 조성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업조합 위주로 재편 예고

국내 사업조합 수는 226개로 전국 조합·연합회(206개) 수와 비슷하다.

이 중 시장과 상점가의 사업조합을 제외한 제조업 사업조합은 105개에 불과하고 대부분 협동화 단지나 시설의 운영·관리를 주업무로 하고 있다.

개정법은 사업조합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 요건을 크게 완화했다.

동일한 '시·군·구' 내에 소재한 업체끼리만 사업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업무 구역 제한 규정을 폐지했고 설립 발기인 수도 7인에서 5인으로 줄였다.

'중소기업 간 경쟁입찰'에 조합 참여가 허용되면 사업조합 결성은 더욱 활성화할 전망이다.

실제로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는 단체수의계약을 대체하는 중소기업 간 경쟁입찰에 사업조합에 한해 컨소시엄 형태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조합 관계자는 "개정법에 따라 전국 단위 업종별 조합 중심의 기존 협동조합 체제가 사업조합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