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경영진은 한 달여에 걸친 파업 사태가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수시로 노무관계 임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갖는 등 여름 휴가철이 무색할 정도다.

내년부터 복수 노조가 허용됨에 따라 계파 간 갈등을 빚고 있는 현 노조가 여러 개로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도 현 노조 집행부를 반대하는 계파들 때문에 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부결될까봐 전전긍긍해야 했다.

내년에는 특히 현대차 노조가 산별 교섭에 나섬에 따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 LG 등 다른 기업들도 내년 노사관계 대응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노사 관리에 투입한 비용 및 시간보다 1.5~2배를 더 들여도 모자랄 판"이라는 노무 관계자들의 하소연만 이어질 뿐이다.


○'노무사 자격증 모두 따라'

삼성그룹은 최근 전 계열사 노무·인사 담당자들에게 노무사 자격증을 따라고 지시했다.

노사문제 전문가가 되지 않고서는 노무 관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은 복수 노조가 허용되는 내년에 그동안 지켜 온 무노조 전통이 깨질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이 삼성을 우선 공략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그야말로 폭풍 전야 같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동국제강도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노무담당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기업들은 또 복수노조 허용에 따라 사무직과 비정규직이 별도 노조를 설립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LG계열사들은 최근 1년 새 비정규직 비율을 5%포인트가량 줄여 20% 수준으로 조정하고 생산 라인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분리하는 등 위험요소 차단에 나섰다.

SK㈜는 경영협의회를 수시로 열어 승진 연한이 늦다는 등의 사무직 요구 사항을 최대한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무직 노조는 회사의 주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 회사가 입는 타격이 생산직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산별교섭 대응책 '고심'

올해 GM대우 등 자동차 4사와 현대하이스코 등 대형 사업장들이 속속 산별 노조로 전환함에 따라 새로 산별 교섭에 참여하게 된 기업들은 대응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현대차 등은 자동차공업협회 등 사용자 단체를 통해 공동 대응하는 한편 사업장별로도 비공식 협의를 통해 조속한 타결을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 등 그동안 산별 교섭을 해온 곳의 관행이 '산별교섭 따로 사업장별 따로'였다는 점에서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또 "산별 교섭이 시행되면 비정규직 노조원도 정규직과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협상하게 되는 만큼 상대적으로 낮았던 비정규직의 임금인상 요구 수준이 대폭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섭창구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강성이었던 승무직 직원들이 별도 노조를 만들어 상급 단체를 한노총이 아닌 민노총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도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원칙대로'와 '눈치 보기'

내년부터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이 금지되지만 기업들은 눈치를 살피고 있다.

재계가 공통으로 요구한 사안이나 노조측 반발을 무시할 수만은 없어서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노조는 재정 자립을 위해 회사의 기금 출연을 요구하지만 이자 수입으로 노조 전임자 임금을 충당하려면 수백억원을 내놔야 한다"면서 "그럴 돈이 있다면 서비스 개선이나 투자에 쓰겠다"며 원칙 고수 입장을 밝혔다.

반면 대우조선해양은 "그동안 노조 전임자에게 12억~13억원을 지급했으나 한 해 걷히는 조합비가 13억원 수준에 불과해 재정 자립이 어려울 듯하다"며 "노조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업들은 노사공동위원회와 같은 상설 조직을 만들어 여기에 노조 전임자가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월급을 주는 등 편법이 동원되거나 노조측이 임금에 상응하는 다른 요구 사항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뚜렷한 해결책 찾기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다.

정태웅.오상헌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