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저녁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제주도에 있었다.

한국능률협회와 무역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하계 세미나에서 'FTA 전도사'답게 '왜 FTA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는 그가 무역협회 회장이 된 뒤 새로 얻은 별명이다.

'시간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그를 제주도에서 만났다.

이 회장은 "아주머니들(기업 최고경영자들의 부인들)이 강연을 듣고 '회장님 말씀 들으니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하더라"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달 31일 '환갑'을 맞았다.

33년여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2월 회장에 취임한 그는 "협회를 무역엽계가 진정으로 기댈 수 있는 있는 버팀목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최근엔 중소기업 수출과 해외시장개척에 지원하는 무역기금 융자 재원을 105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늘리는 등 공적인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 FTA와 관련,이 회장은 "생존을 위한 대안"이라며 "이성보다는 감성,객관적 사실 보다는 주관적 사실에 근거해 반대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협회가 설립된 지 올해로 60년이 됐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아무것도 없던 시절,협회 창립은 우리나라가 무역국가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계시와 같았습니다.

350만달러였던 수출은 1964년 1억달러,71년 10억달러,77년 100억달러를 넘었고 올해는 3000억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은 무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무역협회가 기여한 부문 또한 적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무역입국이란 말은 잠시도 잊을 수 없는 협회의 슬로건입니다."

-취임 후 협회의 공익성을 강조하고 계신데,향후 협회 운영의 지표는 무엇입니까.

"외부에서는 협회가 자산이 많아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장관 시절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죠.하지만 와서 보니 선입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의 짜임새도 있고 일도 많이 합니다.

문제는 회계나 출연금 절차에서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해외 지부장을 선임할 때 사내 공모절차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이사회엔 중소기업과 지방 대표들을 75%까지 늘려 협회 운영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공익성,수익성 이 두 가지는 나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협회가 수익성의 바탕 위에서 더욱 공익적인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직원들,특히 간부들이 얼마나 현장성을 갖고 회원사들을 지원할 수 있느냐죠.책상머리에서보다는 수요자의 편에서 모든 것을 보라고 강조합니다."

-한·미 FTA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합니다.

갈등을 해결할 길은 없습니까.


"한·미 FTA는 무역업계를 대표하는 협회의 목표(Goal)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사'라는 말을 즐겁게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한·미 FTA를 알릴 수 있는 강의도 기쁜 마음으로 나가고 있지요.

기본적으로 세계무역질서는 다자체제로 가야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다자체제를 달성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자체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FTA가 체결되는 양자체제로 갈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는 우리로서 어쩔수 없는,생존을 위한 대안입니다.

찬반논란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협상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다만 이런 의견들이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지키는 전제에서 자유롭게 제기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점이 아쉬운 부분이지요."

-한·미 FTA 체결에 따른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는데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개방에 따른 부담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만약 우리가 FTA라는 거대한 흐름을 타지 못할 경우 어떤 문제에 부닥칠지도 꼭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본과 멕시코가 FTA를 맺은 뒤 우리 타이어 수출이 중단되고,EU와 터키가 FTA를 한 뒤엔 우리 기업들의 공장이 동유럽과 터키로 많이 나갔잖아요.

결국 우리가 EU와 FTA를 먼저 맺었다면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덜 줄었다는 해석이 가능하죠.결국 FTA를 안 하면 우리 일자리를 빼앗기든지,수출이 중단되든지,우리 기업들 공장이 모두 해외로 빠져나가든지 하겠지요.

반대 목소리에 묻혀 이런 우려들은 간과되고 있어요."

-취임 때 일부 중소 회원사들의 반대도 있었는데요.

"협회 회원사가 6만7000개에 이르다보니 크고작은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총회 당시 문제는 제 개인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협회가 좀더 세밀한 부문까지 챙겨 일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협회는 틈새없이 구석구석 서비스하는 데 노력할 것입니다.

반대 목소리를 냈던 회원사들을 협회 운영에 참여시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를 반대했던 분들을 요즘 만나면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합니다(웃음)."

-고유가와 환율하락으로 무역업계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올해 수출 목표 달성이 가능합니까.


"지난해 2844억달러를 수출했습니다.

올해는 수출이 3000억달러를 넘어서 31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수출은 건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용적으로는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유가는 여전히 감내하기 힘든 수준이고 환율도 불안합니다.

때문에 협회는 거시지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줄 것을 정부에 기회있을 때 마다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소수 몇 개 품목에 의존하고 있는 수출상품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올해 휴대폰 수출도 좋지 않고 반도체도 불안합니다.

지역적으로는 브릭스(BRICs)와 같은 신흥시장 공략에 더 힘을 쏟아야 할 때지요."

제주=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