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해보니 1년에 1000만원씩은 더 버는 셈이더라고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다 지난 2000년 다국적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ASE코리아로 옮긴 이석원 부장.그는 동료 엔지니어들이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때마다 말그대로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이직을 만류한다.

그 때마다 내세우는 '단골 레퍼토리'는 출산·육아 친화적인 기업문화.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유혹의 수단'은 사내 어린이집이다.

1000만원이라는 계산은 이렇다.

민간 보육시설에는 월 40만~50만원의 보육료를 내야 하지만 사내 어린이집에 한 달 들어가는 돈은 8만원.어림잡아 한 해 500만원까지 차이가 난다.

여기에 사내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영어 바이올린 발레 등을 별도로 가르치려면 500만원은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금전으로 따진 이득만 그렇다.

아이들이 직장 내 함께 있으니 마음도 푸근하다.

"저도 경쟁사로부터 연봉 30%를 더 줄테니 오라는 제의를 받았지요. 하지만 와이프가 먼저 반대를 하던걸요."(이 부장)

1998년부터 사내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ASE코리아에서 이 부장과 같은 생각을 가진 직원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내 어린이집을 비롯한 출산·육아 친화적 기업 문화 덕분에 이직률이 5.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업계 평균은 무려 20%다.

이 회사가 어린이집을 처음 만든 1998년의 이직률 9.3%과 비교해도 크게 낮아진 수치다.

자연적으로 11년 이상 회사에서 근무한 숙련공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4년 282명에서 지난해 364명으로 늘더니 올해는 442명으로 불었다.

기능직 사원을 대부분 사내 추천으로 뽑다보니 자매가 함께 일하는 건 다반사.어머니와 딸이 나란히 한 라인에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업계에 소문이 퍼지면서 대기업만 선호하던 대졸 엔지니어들도 입사 기회를 잡으려고 군침을 흘린다.

"1명만 뽑는다는 공고를 내도 수십명이 이력서를 낼 정도"(박명서 인사팀 차장)다.

숙련공들의 풍부한 경험,회사에 대한 충성도는 어린이집이 생긴 후 지난 8년 동안 ASE코리아의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1999년 회사의 경영권이 미국 모토로라에서 대만의 ASE그룹으로 넘어가면서 조직 내부에 적지 않은 동요가 있었지만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아무런 변화없이 인수·합병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정보기술(IT) 경기 둔화로 창사 이래 처음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2001~2002년에도 가족과 같은 끈끈함은 회사와 종업원 모두에게 큰 힘이 되었다.

2001년에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ASE코리아와 어린이집을 직접 방문,노사화합의 회사 분위기를 극찬하기도 했다.

이창섭 인사담당 상무는 "그동안 쌓아온 잠재력으로 2003년부터는 매출을 매년 50% 가까이 늘리고 있으며 영업이익률도 20%에 육박한다"며 "엔지니어들과 기능직 숙련공들의 기초가 든든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게 바로 성장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중국에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대만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이지만 중국 바이어들이 전 세계 계열사 중 ASE코리아 제품을 가장 선호하고 있어서다.

이 상무는 "한국의 반도체 산업과 ASE코리아의 품질이 이렇게 인정받는 건 한국 여성들의 섬세함 때문"이라며 "여성들의 가사와 육아를 회사가 지원하지 않으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이런 회사 분위기 덕분에 ASE코리아의 출산율은 2명을 훌쩍 넘는다.

1997년 사내 결혼에 골인한 장명석 수석연구원은 세 아이를 모두 회사 어린이집에서 키운 케이스.그는 "어린이집 덕분에 세 아이의 아빠가 될 수 있었다"며 "회사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활짝 웃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ASE코리아는

반도체 제조,테스팅 전문업체다.

1976년 미국 모토로라의 아시아 지역 첫 반도체 공장(서울 광장동)으로 설립됐다.

1997년 창립 20주년을 맞아 광장동에서 파주로 시설을 신축,이전했다.

1999년에는 대만의 반도체 패키징·테스팅 회사인 ASE그룹에 인수됐다.

7월 말 현재 1546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311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매출액이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회사는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