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8일 '문재인 카드'를 일단 접은 것은 인사권을 둘러싼 당·청 갈등이 재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청와대는 7일 오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전 민정수석 쪽에 무게를 두었지만 정치적 득실을 따진 결과 마이너스가 더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문재인 카드를 고집할 경우 당·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닫고 여당의 도움 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레임덕 현상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달 말 임시국회에서 국방·사법개혁부터 민생법안 처리까지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가능한 현안이 쌓여 있어 여당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악화된 남북관계와 전시작전권 환수 논란,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수많은 문제들도 일단 당과의 관계를 정상궤도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외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 전환은 지난 6일 당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 당시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는 원칙을 확인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문 전 수석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정치력에 손상을 입지 않는 데다 당·청 갈등을 봉합하면서 '끝까지 당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대통령의 권위까지 되찾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향후 인사에서 만큼은 노 대통령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여권 일각에서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문 전 수석을 점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깔고 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