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이상한 고등학교 풍경. 스승과 제자들이 모두 성병을 앓아 조퇴한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원조교제에 나선다.

그녀는 또 부유한 남학생 안소니를 사랑하고,안소니는 트랜스젠더인 두눈박이를 연모한다.

두눈박이의 형 외눈박이도 다른 소녀를 좋아하지만 메아리가 없다.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는 통념을 초월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사랑과 성(性)의 반란사다. 2003년 말부터 'B급 달궁'이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해 온 만화가 채정택씨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성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추구해 온 이 감독의 전작들과도 일맥 상통한다.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그렸던 '정사',조선시대 바람둥이 선비의 러브게임을 다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에서처럼 '다세포소녀'의 주인공들은 윤리적 판단을 접어둔 채 성을 즐기기 위한 도구로 여긴다.

카메라는 성적 소수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자옷을 입고 싶어하는 남자와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등은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못할 뿐,우리 곁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러나 그들의 일탈 행위는 간접적이며 순화된 양식으로 묘사돼 있다. 화면은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팬터지 세상이다. 가난한 소녀가 사는 집조차도 예쁘게 꾸며졌다. 인터넷 원작 만화의 '노골적이며 저속한' 표현양식과는 다르다. 이 때문에 영화는 아름다운 동화같은 세상을 구현했지만 우리 시대의 성문화를 가감없이 드러내려는 원작의 의도와는 멀어졌다.

이야기도 에너지를 상실한 채 '야한 상상'을 나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관객은 내용에 동화되지 못한 채 한걸음 물러서 관조할 뿐이다. 뮤지컬 장면 또한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뮤지컬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하려 했지만,차라리 이전 장면의 느낌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법하다. 10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