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는 브레이크액,에어컨 냉매 등 각종 액(液)이 들어간다.

자동차에 필요한 정량의 액을 주입하지 않으면 브레이크가 밀리고 에어컨은 정상적인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 냉기를 제대로 내뿜지 못한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제일기연(대표 김한성)은 자동차 조립 과정에서 각종 액을 정량 주입해주는 장치를 만드는 '액 주입 장비' 전문 업체다.

직원은 20명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매출 59억원과 순이익 2억5000만원을 올렸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김한성 대표(49)는 절친한 친구가 경영하는 제일네트워크에서 연구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직접 개발한 자동차 액 주입 장비 및 완성차 검사장비 아이템을 가지고 1997년 제일기연을 설립했다.

그러나 창업하자마자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경영 수업료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창업한 지 몇 개월 안돼 기아자동차가 부도나면서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고 주요 판로가 끊겨 버렸다.

곧 이어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카센터용 에어컨 냉매 주입기를 160대 생산했으나 80대밖에 못 팔고 그나마 40대 값은 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당시 고의 부도가 유행처럼 일어나 제품값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지인이나 친척들로부터 돈을 빌려 직원들에게 월급의 60%를 지급하면서 근근이 버텼다"고 회고했다.

1998년 말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회생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전 기아차 협력업체들이 현대·기아차 협력업체로 자동 등록된 것이다.

기아차에 신규 투자가 이뤄지고 현대차가 새로운 납품처가 되면서 일감이 많아졌다.

어려운 시기에도 주요 연구인력들인 창립 멤버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제품개발 및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던 덕분이었다.

제일기연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서 지난해에는 중국 슬로바키아 등의 현대·기아차 해외 공장과 말레이시아 러시아 이란 태국 베트남 등의 현지 회사에 모두 27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이처럼 회사가 재기하는 과정에서는 특히 산업기술대와 산학협력을 통해 꾸준한 기술 향상을 이뤄낸 것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 회사는 2000년 산기대와 '가족회사' 관계를 맺었다.

'가족회사'는 산기대의 독특한 산학협력제도다.

교수는 업체의 기술 자문에 응하고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업체는 재학생에게 현장 실습과 취업의 기회를 제공한다.

제일기연은 특히 김 대표와 이 회사 담당인 강대진 산기대 교수(메카트로닉스)가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동창인 인연으로 돈독한 산학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술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일례로 2002년에는 에어컨 재생 냉매의 순도를 기존 제품보다 20~30% 높인 '자동차용 에어컨 냉매주입기'를 중기혁신과제를 통해 공동 개발하기도 했다.

제일기연이 수출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부닥뜨린 난제들도 산학협력을 통해 해결했다.

가장 큰 난제는 '성능 입증'이었다.

외국 업체들이 정량 주입의 관건인 '주입건(GUN) 진공도 및 내구성'에 대한 성능시험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당시 국내에는 이를 전문적으로 테스트하는 장비가 없었던 것.김 대표는 "수출한 장비가 보증기간(2년) 내에 하자가 발생하면 AS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성능 테스트는 수출영업의 중요한 과제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대표는 강 교수와 함께 작년 7월부터 '자동차 주입건 진공도 테스트 장치' 개발에 들어가 지난 4월 개발을 완료했다.

이 장치는 컴퓨터와 연동해 주입건의 진공도와 진공 유지시간,내구성 등을 자동으로 계측,제어할 수 있는 테스트 장비다.

이 장비의 성능시험을 거친 제품들은 오는 11월 중국 옌칭에 있는 기아차 공장에 첫 공급될 예정이다.

김 대표는 "국내 업체 중 처음으로 자체 테스트 설비를 갖춤에 따라 회사의 신인도가 높아지고 보다 신뢰성 있는 제품 개발이 가능해졌다"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적극 도전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