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화장실에 청소아줌마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때,사무실에서 슬리퍼를 신는 게 자연스러울 때,두루마리휴지가 식탁에 있어도 심드렁할 때,놀라면 무심코 '아이고' 하게 될 때,그리고 일본이 괜히 싫을 때." '주한 미국인이 한국사람 다 됐다고 느낄 때'라는 우스갯소리의 사례들이다.

누가 지어냈는지 몰라도 그럴 듯하다.

마지막 것은 더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그렇다는 대목에 이르면 쓴웃음이나마 짓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우리는 일본과 관련된 일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본 앞에만 서면 우리 민족은 언제든 하나가 된다.

일본이 그렇게 무조건 싫다면서도 극일(克日)은 말뿐,주변엔 일제(日製) 물품이 넘친다.

상황은 물론 전과 다소 다르다.

관광이든 출장이든 일본에 갔다 하면 '아키아바라(秋葉原)'부터 들러 전기밥솥 보온병 녹음기 카메라 등을 사들이던 건 옛말,지금은 한국산 밥솥을 일본에 수출하고 소니 TV는 국내시장에서 맥을 못춘다.

그러나 도요타 렉서스는 상반기 수입차 판매 1위고,일제 디지털카메라와 게임기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의식주 부문에 소리 소문 없이 파고든 일본 브랜드 또한 셀 수 없다.

백화점 의류매장엔 일본 브랜드들이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SKⅡ 등 화장품 시장의 일제 붐 또한 만만치 않다.

눈에 띄는 소비재는 약과다.

80년 3000만달러였던 대일 기술도입액은 지난해 24억2000만달러로 급증했고 소재 및 부품 수입도 증가일로다.

결국 올 상반기에만 대일 무역적자가 124억9000만달러를 넘어 이대로 가면 올해 대일 무역적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다.

이런 구조적인 대일 무역역조 현상이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 감소의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현대경제연구원). 국제화 개방화 시대에 어느 나라 물건은 안된다 식의 얘기는 있을 수도 통할 수도 없다. 기술력과 그에 따른 품질 향상 없이 핵심부품과 고부가가치 물품을 일제에 의존하는 한 극일은 불가능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