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순환출자 금지 규제 도입,금리 인상 등 경제 현안에 대한 당·정 간,부처 간 입장이 엇갈리면서 경제정책의 방향이 헷갈린다는 목소리가 많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 한 달이 흐르도록 이렇다할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경제정책 레임덕 현상'이 지속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여건에 처한 나라 경제는 갈수록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은 이달 초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를 돌며 이른바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출총제 등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경영권 보호장치를 강화해줄테니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달라는 제안이다.

정부는 그러나 김 의장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히려 기업 규제를 강화할 태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총제를 폐지하는 대신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보다 강력한 규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공정위의 방침에 재경부 산업자원부 등 경제부처들이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고 열린우리당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지만 공정위는 요지부동이다.

기업 경영권 보호 강화에 대해선 재경부가 시큰둥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만 혼란스러울 뿐이다.

거시정책도 혼돈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경기하강을 우려해 올 하반기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경제계는 물론 당·정의 요구를 뿌리치고 콜금리를 전격 인상했다.

정부는 경기를 살리겠다고 돈을 푸는데 한은은 물가가 걱정이라며 돈을 환수하는 상반된 정책을 편 것이다.

이 같은 경제정책 혼선의 근본 원인은 경제사령탑의 리더십 부재 탓이란 게 공통된 지적이다.

17일로 취임 한 달을 맞는 권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을 뿐더러 정책 조정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권 부총리는 김 의장의 '뉴딜' 제안이나 공정위의 순환출자 금지 추진,한은의 콜금리 인상 등에 대해 모두 유보적 태도를 보이거나 기존의 원론적 입장만 반복했다.

경제부총리가 현안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다 보니 여당과 각 부처들의 중구난방식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재경부도 나름대로 입장은 있지만 재경부마저 자기 목소리만 내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하고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정 간,부처 간 의견이 갈리고 논란이 많은 현안일수록 경제부총리가 적극적인 '조정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한은과 재경부는 경기 인식이 다르고,여당은 너무 앞서나가는 반면 청와대는 먼산만 바라보고 있다"며 "경제부총리의 정책 리더십이 아쉽다"고 말했다.

유병삼 연세대 교수는 "집권 후반기 당·정이 대립하는 등 정치가 혼란스러울수록 경제정책만큼은 경제부총리가 중심을 잡고 민간에 일관된 시그널(신호)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