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결정자들은 종종 제조업이냐, 서비스업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데 제조업도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런 선택의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소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는 '생태산업단지' 국제회의가 지난달 서울에서 열렸다. 곳곳에 널려 있는 산업단지를 오염물을 배출하지 않는 자연생태계 같은 청정(淸淨) 산업단지로 만들자는 얘기다. 말이 좋아 생태계지 그게 과연 가능한지 의심스럽다고 말해도 솔직히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데 캐나다를 비롯해 영국 오스트리아 미국 스위스 등에서 보고하는 성공사례들을 접해보면 그런 의심은 확 달아나고 만다. 청정도 청정이지만 산업단지안에 있는 한 기업의 부산물과 폐기물이 다른 기업의 원료나 에너지로 다시 활용되는 효과도 크다는 게 공통된 자랑이다.

흔히들 제조업은 궁극적으로 후발국으로 넘어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비용도 싸고,환경규제도 덜 받는 등 후발국 제조업의 이점과,또 그 이점을 노리고 선진국 제조기업들이 후발국으로 이전하면서 줄어드는 기술격차로 인해 결국 제조업의 주도권도 이동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런 통념을 깨뜨리는 분야가 늘고 있다. 후발국이 발전하면서 비용이 상승하거나 환경규제가 도입되기 시작하고, 또 국제무역의 규범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진국 제조업이 변화에 적응해 새로운 진화에 성공한 이유도 있다.

생태산업단지도 그런 사례의 하나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제품설계에서부터 오염발생 요인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거나 줄이자는 이른바 청정생산체제라는 개념과 맞닿게 된다. 청정생산이 확산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청정기술 자체가 새로운 성장산업이 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또 다른 파급효과도 동반하고 있다. 자동차 가전 등에서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재(再)제조(Remanufacturing)산업도 그 중 하나다. 사용된 제품을 신제품과 유사한 수준의 수명주기를 갖는 또 하나의 제품으로 다시 탄생시킨다는 얘기다.

청정이라는 방향으로 제조업이 진화하면서 이른바 '진화의 동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 주목할 만하다. 동조화가 무서운 이유는 여기서 낙오하면 도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잘 한국 제조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음을 던진다. 그 배경엔 십중팔구 '중국 위협론'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데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국 제조업을 보면 진화의 세 가지 포인트를 읽을 수 있다. 첫째는 후발국 도전에 비용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혁신으로 대응해 나간 것이고, 둘째는 정보기술, 나노, 생명 등 신기술 주도권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며, 셋째는 청정 제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런 얘기다. 상당기간 지속될 공산이 큰 환율하락(원고), 고유가는 기존 주력 제조업 진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고, 신기술 경쟁은 새로운 제조업 창출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큰 관심이 쏠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청정은 제조업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직결되는 문제다. 과연 우리나라에 글로벌 지속가능기업은 얼마나 될까.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