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15일 종전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찾자 일본 TV방송들은 생중계를 시작했다.

참배가 끝난 후에도 매시간 뉴스를 전했다. 하루종일 부슬비가 내렸지만 신사 주변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신사측이 오후 7시 문을 닫은 뒤에도 가족 단위 방문객과 퇴근길 직장인이 몰려들어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역사나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은 일본인 중에서도 최근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지방 사람들도 도쿄에 오면 시간을 내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다.

2001년 4월 취임 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국제적인 뉴스가 되면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에게 새로운 '명소'가 됐다.

전몰자들의 영령을 기리는 신도 시설이나 멋진 벚꽃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자신들 위주로 역사를 되돌아보는 교육의 현장 같았다. 한국과 중국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참배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모습도 일본 국민들에겐 강한 메시지를 던져준 것 같았다.

총리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령을 추모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했다"고 했지만 일본 국민들이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총리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표면적 방침)가 다르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패전의 아픈 역사를 잊지말고 강한 일본을 재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했을 것이다.

자정까지 진행된 공영방송 NHK의 생방송 '일본의 미래' 프로그램에도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내외에서 총리의 참배에 대한 비판적 논평이 쏟아졌지만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시청자 의견은 절반이 안됐다.

한국과 중국의 내정 간섭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컸다.

공개 방송을 고려하면 국민들의 70~80% 이상이 '고이즈미 행동'을 지지한다는 의미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마음을 읽고 행동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말없는 다수 국민의 뜻을 헤아려 신사 참배를 강행하지 않았나 싶다.

'강한 일본'을 원하는 국민들을 위해 하늘을 찌르는 이웃나라의 원성을 외면한 것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