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대법원장은 16일 잇달아 발생한 법조비리 사태와 관련,"전국의 모든 법관과 더불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 숙여 사죄했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입찰보증금 횡령 사건으로 윤관 전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두 번째다.

이어 전국에서 모인 법원장 26명은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외부인사와의 접촉 제한 등 비리 근절 대책들을 마련했다.

하지만 대부분 기존에 발표된 대책을 재포장한 수준에 그치거나 법조인 출신이 대거 포진한 국회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들이어서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법조비리 근절 방안은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제시한 방안은 크게 △법관징계 절차에 외부인사 참여 △법관감찰 강화 △법조비리 신고센터 설치 △외부인사와의 접촉 제한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법관징계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법관 법관징계위원회에 외부인사를 3분의 1 내지 과반수까지 늘리기로 했다.

지금은 위원장 포함,6명 위원과 예비위원 4명이 전부 법관으로 구성돼 있다.

또 법관감찰기구를 신설하고 암행감찰도 상시화하는 등 내부감찰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법관 1명을 증원해 감찰업무를 전담시킬 예정이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법조비리신고센터를 설치해 신고 접수시 즉각 조사에 나설 수 있도록 하고 법관집무실 출입자 명부도 작성키로 했다.

이와 함께 재직시 비리 관련자는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즉각 수리하지 않고 퇴직 이후 변호사 등록과정에도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사법부 기능 마비 우려가 배경

판사-브로커,판사-판사-브로커 등 판사들이 직접 연루된 검은 유착의 고리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 상태다.

"판사와 검사가 돈을 받고 재판한다"는 말은 상식처럼 굳어져 가는 형편이다.

급기야 비리연루 판사의 과거 판결에 불복하는 진정서가 검찰에 제출되는 등 법조비리 후폭풍이 현실화되면서 사법부 기능 마비를 염려해야 할 상황까지 도달한 상태다.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

전국의 법원장들이 제시한 방안은 대부분 기존 발표 내용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쳐 "사법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제시해 달라"는 이 대법원장의 이날 훈시를 무색케 했다.

또 파급효과가 있는 대책들은 대부분 국회에 장기 계류 중이다.

퇴직 후 2년간 자신의 최종 근무지 관할 형사사건 수임을 금지하고 비리법조인의 변호사 등록 거부 기간을 퇴직 후 2년에서 5년 정도로 확대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과 비리의혹을 받는 현직 판·검사는 혐의가 확인될 때까지 옷을 벗지 못하도록 하는 비위공직자 의원면직 제한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을 다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16명 위원 중 11명이 판·검사 및 변호사 출신이어서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김병일·이태훈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