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을 개조해 승률을 조작했는지 직접 단속하는 일은 없었어요.주로 상품권과 관련된 단속만 해요.3~4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것 같아요."

22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사행성 게임장.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직원은 "단속은 신경쓰지 않는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경찰에서 나오고 구청에서도 단속을 나오지만 영업정지를 먹은 적은 없다"며 단속을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신림동의 다른 게임장.입구에는 관악구청장이 지정한 '모범업소' 간판이 눈에 띄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178만원까지 '잭팟'이 터졌다는 문구가 화이트보드에 대문짝 만하게 쓰여 있었다.

당첨 제한 금액 2만원을 훨씬 넘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래도 '모범업소' 간판을 버젓이 내걸고 영업하고 있다.

관악구청의 담당 공무원은 "지정 당시에는 불법영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선정됐을 것"이라며 "우리가 사후관리까지 일일이 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게임장 옆에 있는 상품권 환전소의 직원은 "단속 나오면 매입·매출 장부만 검사한다.

특별히 문제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7000~8000여장의 상품권이 회수된다고 밝혔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장 업자들이 경찰과 자치단체의 단속을 개의치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단속이 형식적인데다 단속에 걸리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게임기 승률을 조작하거나 당첨 금액을 수백만원대로 늘려 손님을 끌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사행성 게임장 단속은 경찰 관할구청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세 곳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상품권 관련 사항만 확인할 뿐 불법영업 여부를 결정하는 '프로그램 개조·변조(연타·예시 기능 등을 추가한 것)'에 대한 단속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게임기 기판을 뜯어봐도 프로그램 개조·변조 유무를 파악하기 힘들다"면서 "단속하려면 규정 이상 금액의 잭팟이 터질 때까지 게임장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바다이야기 사태'가 다뤄지기 전까지는 사이버머니를 환전해 도박하는 성인PC방 위주로 단속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과 같은 릴 게임장은 단속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관악구청에서 게임장 단속을 담당하고 있는 한 공무원은 "주로 청소년 게임기 설치비율(면적의 40% 이상을 의무적으로 18세 미만 이용 가능한 게임기로 채워야 함)을 지키는지만 단속한다"면서 "프로그램 개조·변조에 관한 것은 규정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등위 사후관리부 단속반의 한 관계자는 "프로그램 개조·변조의 경우 경찰의 협조 요구가 들어오면 같이 단속에 나가지만 단속반 인원이 6명뿐이라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속 권한이 없어 점검 차원에서 게임장에 나가도 업주들이 물리력을 동원해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행정처분도 불법영업을 하는 게임장 업주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지난 21일 현재 총 144개소가 등록돼 서울시 자치구 중 게임장이 두 번째로 많은 강남구의 경우 올해 들어 총 69건의 행정처분을 내렸으나 그 가운데 등록취소는 1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1~3개월의 영업정지나 최대 450만원의 과징금 처분이었다.

서울 중심가 대로변이나 역세권 게임장의 경우 한 달 순익이 1억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450만원의 과징금 처분으로 사행성 영업을 근절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영업정지도 업주들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1일당 5만원으로 환산한 과징금 처분으로 변경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이태훈 기자 오진우·민경민·이옥진

인턴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