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에 출석해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안을 마련할 때)가능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출총제의 대안으로 보다 더 강력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는 여야 의원들의 비판에 대한 해명이었다.

하지만 재계는 권 위원장의 발언을 무게있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정황을 감지한 듯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은 24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인 간담회에서 출총제의 조건없는 폐지를 강조했다.

출총제 보완 운운하며 본질을 흐리는 듯한 공정위의 행태에 대한 당의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강 위원장은 특히 "서둘러 출총제를 폐지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을 공정위에 요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당정 간 엇박자로 경제 정책이 표류해 온 탓에 강 위원장의 시원스런 발언에도 기업인들은 좀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출총제 대안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장선진화 태스크포스(TF)' 회의의 진행 과정을 보면 재계의 우려가 근거가 없진 않다.

대기업의 한 재무담당자는 "전경련 등을 통해 회의에서 나왔던 얘기를 전해 들으면 기업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권 위원장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공정위가 출총제의 대안으로 여러가지를 놓고 토론을 거친 뒤 최종안을 만들겠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회의에 참석해 보면 왠지 '순환출자 금지'쪽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분위기를 몰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취임 직후 한 강연에서 자신이 교수 시절에 공무원과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공정거래법 관련 강좌를 개설했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기업인들은 "공정거래법이 지뢰밭과 같아서 불안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하자 한 공정위 공무원은 "왜 도로의 중앙선 같은 공정거래법을 지뢰밭처럼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사무국 공무원과 기업인 사이에는 규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렇게 크고 깊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권 위원장이라면 언제까지 의견 수렴만 할 게 아니라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한다.

김동윤 경제부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