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자유무역협정(FTA) 전쟁 중'이다.

FTA에 미온적이던 나라들이 지난 7월 말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라운드(DDA) 협상이 결렬된 뒤 저마다 FTA 상대국을 찾느라 혈안이 돼 있다.

경쟁은 아시아에서 가장 거세다.

중국 일본 아세안(ASEAN) 인도 말레이시아 등이 각각 수십 개 나라와 협상을 벌이는 등 말 그대로 'FTA 열풍'이 불고 있다.

때마침 한국은 미국과의 FTA 협상을 출범시켜 세계 최대 시장을 선점하고 FTA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

그러나 국내 일부 세력의 거센 반대는 'FTA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세계의 FTA 전쟁을 시리즈로 살펴 본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38차 아세안+3 경제각료회의(AEM)'가 지난 25일 폐막됐다.

이번 회의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의 움직임이었다.

일본의 니카이 토시히로 경제산업성 장관이 아세안 10개국과 일본 한국 중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을 잇는 '경제연계 협정(EPA)' 체결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EPA는 FTA와 경제 협력을 합친 개념으로 FTA보다 상위 개념이다.

니카이 장관은 "이를 추진할 '아세안·동아시아 경제연구센터' 설립에 100억엔(약 820억원)을 내겠다"고도 했다.

중국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중국은 2004년부터 아세안+3 차원에서 추진해 온 '동아시아 FTA(EAFTA)' 추진 의사를 재천명했다.

한국에도 FTA 협상 출범을 강력 촉구했다.

아세안도 교착 중이던 인도와의 FTA 협상을 재개키로 했고 호주 뉴질랜드와는 내년까지 FTA를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역외 국가인 미국도 25일 아세안과 FTA 전 단계인 무역투자기본협정(TIFA)에 서명했다.

수잔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아세안에 대한 미국의 무역과 투자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세계 FTA 협상의 결전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시아에서의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정재화 무역협회 FTA팀장은 "아시아는 경제발전 단계가 국가별로 상이한 데다 중국과 일본이 패권 경쟁을 하면서 FTA 추진이 어려웠다"며 "최근 싱가포르를 필두로 아세안 중국 한국 등이 FTA 대열에 뛰어들면서 경쟁적으로 FTA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FTA 허브'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물류 허브가 되면 웬만한 비행기가 다 들르듯 FTA 허브가 되면 각국이 FTA를 맺으려 하는 만큼 FTA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며 "현재 아시아 국가들은 자국 위주로 FTA 구도를 짜려는 FTA 허브 경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나라는 중국과 아세안이다.

중국은 2001년 WTO 가입 이후 FTA를 통상 전략의 새 핵심 목표로 삼았다.

2001년 아세안과 첫 FTA 협상을 시작한 중국은 2003년 6월 홍콩과의 타결을 시작으로 10월 마카오→2004년 10월 아세안(상품협정)→2005년 11월 칠레→12월 파키스탄 타결 등으로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지금도 뉴질랜드 GCC(걸프협력회의:사우디 UAE 쿠웨이트 등 6개국) 호주 아세안(서비스투자협정)과 협상을 진행 중이고 곧 싱가포르와 협상을 시작한다.

나라 수로 따지면 무려 20여개국에 이른다.

이에 따라 중국 상무부는 FTA 협상에 FTA 담당국뿐만 아니라 WTO국을 포함한 4개 국(局)을 투입하는 등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아세안은 중국 한국과 FTA 상품협정을 타결 짓고 이제는 일본 인도 호주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제치고 '아세안 시장의 문(Gateway)'이 되기 위해 일본과 별도의 FTA를 맺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와도 협상 중이다.

일본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과 FTA를 맺었으나 농업 개방에 발목이 잡혀 태국 필리핀 한국과의 협상은 몇 년째 교착돼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이 미국과 협상을 시작한 데다 DDA가 중단되자 16개국 EPA를 제안하는 등 뚜렷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FTA 허브가 되려면 큰 시장과 먼저 FTA를 맺어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며 "중국은 정치적 이유로,일본은 농업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FTA를 맺는다면 역내 FTA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