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라운드(DDA) 협상이 결렬된 지난 7월24일.대만의 천 루이룽 경제차관(현 장관)은 미국 워싱턴을 찾아 "DDA가 중단된 만큼 미국은 대만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며 "연내 대만과 FTA 협상을 시작하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미국과의 협상을 원하는 나라들이 줄을 서 있지만 교역규모 등을 감안하면 대만을 가장 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사흘간 미 기업연구소(AEI) 등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하고 미 의회 의원들을 만나 이런 주장을 반복했다.

대만은 FTA 출범을 위해 '글로버파크그룹'이란 로비스트를 고용했는가 하면 미국과 원만한 통상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지난 2월 아시아 국가로는 가장 먼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대만이 미국과의 FTA를 국가적 과제로 정한 것은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 경쟁국이 미국과의 FTA 협상에 나서며 대만의 수출의존형 경제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만을 FTA 후보국으로 올려놓았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즉각 추진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대만처럼 미국과 FTA를 맺기를 원하는 나라는 우루과이 이집트 뉴질랜드 파키스탄 필리핀 스리랑카 대만 한국 말레이시아 등 공식적으로 25개국에 이른다.

미국은 현재 이스라엘 NAFTA(멕시코·캐나다) 칠레 싱가포르 호주 등 16개국과 FTA를 맺고 있다.

여기에 협상 중인 FTAA(미주자유무역지대-미주 34개국)와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안데스공동체(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 한국 말레이시아 등과 FTA를 체결하면 전체 교역의 50% 가까이를 FTA 체결국과의 거래로 메우게 된다.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의 FTA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

남종현 고려대 교수는 "뭐니뭐니해도 미국이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이라며 "1조7000억달러에 이르는 수입시장을 갖고 있는 미국과의 FTA는 싱가포르 칠레 등과 맺은 FTA의 수 십배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싱가포르 FTA가 2004년 발효된 뒤 1년 만에 싱가포르의 대미 수출이 197억달러→230억달러,무역흑자는 15억달러→18억달러로 증가한 데서 입증된다.

외국인 투자도 마찬가지다.

이홍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 팀장은 "미국과 FTA를 하지 못하는 나라는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반미감정 등 국내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미국과의 FTA 출범은 쉽지 않다.

지난해 미국과 FTA를 원한 25개국 중 협상을 시작한 나라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뿐이다.

특히 미 의회가 부여한 무역신속협상권(TPA)이 내년 6월 만료되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몇 년간은 새로운 협상 출범이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어렵게 시작한 미국과의 FTA 협상이지만 국내 반대는 이념논쟁으로 번지면서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반면 미·말레이시아 협상은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는 등 반미정책을 구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재화 무역협회 FTA팀장은 "미·말레이시아 협상이 타결되고 한국은 실패한다면 국가적 신인도는 물론 수출과 외국인 투자에 큰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