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일본에 이어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환영 리셉션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이모 장관 부인인 문 여사를 'Mrs. Lee'라고 남편의 성을 따라 불렀다.

동석한 다른 한국 관료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으나,그렇다고 지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한국 방문이 처음으로 한국인의 호칭도 일본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해 'Mrs.Moon'이 아니라 'Mrs.Lee'로 호칭한 것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ㆍ캄보디아ㆍ베트남ㆍ미얀마 등의 아시아권에서는 결혼하든,이혼하든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간직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문화가 다양한 만큼 호칭도 그에 버금간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성(性) 구분에 따른 호칭을 별도로 쓰지 않고 '선생'이라는 대중적인 호칭을 선호한다.

일반인들의 경우 심지어 이름의 사용을 피하고 '아줌마'나 '아저씨' 등 서로간의 관계를 호칭으로 대신한다.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도 이런 호칭이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는 '선생'의 동격으로 '상(さん)'을,가족간이나 친한 사이는 '짱(ち♥ん)'으로 호칭한다.

반면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의 세 층으로 구성돼 있는 말레이시아는 각각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특히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말레이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른 나라들과 같이 전통적으로 성이 없고 자신의 이름 다음에 'bin(~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연이어 붙여 사용한다.

유럽은 각기 자기네 나라말로 Mr.Miss Mrs.Ms.등 성과 결혼 여부에 따라 호칭을 달리한다.

호칭에 가장 자유로운 나라를 들라면 미국이 단연 으뜸이다.

미국인들은 성보다는 이름을 즐겨 부른다.

업무 시 백악관의 참모가 대통령의 이름을 불러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호칭문화를 격식과 권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대하는 '수평주의'의 상징이라 여기며 자랑스러워 한다.

반면 전통의 유럽과 유교의 아시아에서는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격식 없는 호칭은 무례함의 상징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름보다는 성을 우선하며,직위에 따라 호칭도 달라진다.

특히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아주 무례한 행위로 간주된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을 예로 들자면 이곳에서는 2년을 이웃으로 살아도 계속 성(Last name)만 부른다.

아주 특별한 어느 날 서로가 우연히 맥주 한잔을 기울이게 되었을 때 한 사람이 정중하게 "우리 이제 이름을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한다.

그러면 그때서야 서로 이름을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영국인들은 정중하면서도 보수적이다.

독일의 호칭문화는 한술 더 떠 숨이 막힐 정도로 엄격하다.

미국에서는 대학 교수(Professor John Kennedy)라 할지라도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면 그저 John이라고 이름만 부를 수 있지만 독일에서는 'Herr(Mr.) Doctor Professor John Kennedy'라고 성별과 직위와 이름을 다 늘어뜨려 사용해야 한다.

박준형 문화간 훈련 전문가 info@cultureco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