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보고프(BOGOF·Buy One Get One Free)' 판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진열장에 '보고프' 표시가 보이면 확실히 눈길을 끈다.

굉장한 할인을 해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주류는 생필품보다 훨씬 '보고프' 판매에 예민하다.

와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병이 공짜라는 사실은 소비 심리를 크게 자극한다.

대형 슈퍼마켓이나 와인 전문점에서 '보고프' 마케팅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와인의 최대 소비 국가 중 하나인 영국 시장을 보면 대형 슈퍼마켓들의 저가 판매 전략은 와인 소비자의 구매 습관까지 바꿔 놨다.

싸게 파는 와인을 누구나 선호하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와인의 약 70% 이상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팔려 나가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판매상들은 '보고프' 프로모션을 줄이려야 줄일 수도 없다.

물론 이 같은 판매 정책은 소비자에게 큰 혜택을 준다.

저렴한 가격으로 와인을 구매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역시 소비자의 입장에서 와인 가격 할인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격 파괴가 과연 옳은 일이기만 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떻게 파격적인 가격 프로모션이 가능한 것일까.

대형 슈퍼마켓 체인들은 그들의 구매력을 이용해 와인 공급상에게 가격 할인을 강력하게 요청한다.

'보고프' 프로모션을 하려면 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는 탓이다.

와인 공급상은 다시 와이너리(와인 생산자)에게 부담을 전가한다.

와이너리는 요구된 가격에서 이윤을 창출할 때까지 생산 원가를 맞춰야 하므로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절반 가격으로 판다는 말은 사실 품질 보증에 대한 확신이 줄어든다는 말과 맥락이 같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가격을 싸게 하기 위해 품질이 조금 나쁘더라도 눈감아 주는 일이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와인을 싸게 파는 정책은 저가 와인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와인 구매자가 품질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높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저가의 와인이라 하더라도 본래 품질보다 더 안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소비자의 와인에 대한 신용을 저해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1만원짜리 와인의 가격을 부풀려 2만원으로 속이고 두 병을 준다면 와인 소비자들은 결코 와인을 저렴하게 즐기는 것이 아니다.

와인 시장이 혼탁해지면 그 피해는 와인 소비자뿐만 아니라 와인 업계에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와인 소비자 역시 와인을 마신다는 겉치레에만 신경 쓰지 말고 와인 자체의 품질과 주변 평가에도 함께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현명한 와인 소비자로서 와인의 가격 대비 만족도를 잘 알고 그에 적당한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와인 병에 손이 가서 후회하는 일이 줄어든다.

바겐 세일을 가장한 사기 판매를 막고 저질 와인이 시장에 범람하는 것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소믈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