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9명과 당·정·군 주요 지도자들이 참석한 외사공작회의가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열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이 자리에서 '화해세계(和諧世界)의 구축'을 중국 외교의 향후 키워드로 제시했다.

화해세계의 구축은 조화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칼을 칼집속에 감추고 실력을 키운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기존의 외교 기본방향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수동적 외교를 걷어치우고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중국이 숨어서 익힌 내공의 힘은 대단하다.

앙숙이던 인도와는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30년 넘게 닫혀있던 실크로드의 문도 다시 열렸다.

베트남과는 영토분쟁중인 통킹만유전을 공동개발하기로 최근 합의했다.

국경을 마주한 카자흐스탄과는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중이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따라 방문한데 이어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남미를 순방중이다.

소원했던 나라와 관계를 개선하고,국제사회의 비주류 국가를 품어안는데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파워가 커지면서 친중(親中) 국가도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아프리카의 차드는 지난달 초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맨먼저 한 일이 미국과 말레이시아 석유회사를 자국에서 쫓아낸 것이었다.

추방의 이유는 탈세 등이었지만 차드의 한 석유광구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기업은 안전하게 자리를 지켰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중심자리를 확실히 차지하며 한편으로는 해외 에너지 자원을 잇따라 '접수'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한국에서 요즘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자주'라는 단어 때문이다.

자주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정말 자주적인 힘을 갖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망한 논쟁만 일삼고 있는 것 같아서다.

중국은 어둠속에서 갈고 닦은 칼을 들고 국제사회에서 자주적으로 질서를 세우고 있지만,한국은 자주라는 말 자체에 꽁꽁 묶여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