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이 국내에 본격 진출한 지 1년여 만에 퇴출 위기에 몰렸다.

대형마트 전자전문점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 자취를 감춰버렸거나 판매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지난해 5월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화된 하이얼의 한국 시장 공략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이마트·홈플러스 등서 줄줄이 '퇴짜'

지난 5월 말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하이얼 제품을 매장에서 모두 철수시켰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했기 때문이다.

이준철 가전담당 차장은 "수도권 5곳,부산 2곳 등 7개 점포에서 판매했는데 작년 매출이 고작 1억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간에 하이얼측 영업담당이 후임자도 알려주지 않고 바뀌는 통에 직매입한 재고를 처리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요즘 영업 재개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만 당분간 검토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2003년 8월에 하이얼 와인셀러 3종을 판매하다가 1년도 채 안 돼 이듬해 5월 물건을 빼버렸다.

애프터서비스(AS) 등 사후관리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높은 게 이유였다.

대형마트 중 유일하게 하이얼 제품을 취급하고 있는 롯데마트도 급격한 판매 감소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회사 관계자는 "올 8월까지 매출이 작년(5억원)의 30% 수준에 그쳤다"고 말했다.

냉대받기는 TV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마찬가지.한 홈쇼핑 관계자는 "AS를 중시하는 홈쇼핑 고객의 특성상 서비스 및 배송망이 부족한 하이얼 제품을 취급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신진호 GS이숍 과장은 "올 여름 에어컨을 팔긴 했는데 매출이 미미하기에 의미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레전자등에도 밀려

하이얼의 고전에 대해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등 세계 1,2위를 다투는 대형 기업의 텃밭인 한국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을 꼽는다.

하이마트 관계자는 "대표적인 게 AS센터에 대한 투자"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각각 133개,129개의 직영 AS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하이얼은 용산 전자상가 내에 한 곳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삼성전자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 제품만을 취급하는 서비스센터를 해외 곳곳에 개설,올해 안에 전체 숫자를 1000개로 늘릴 예정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직영 AS센터 한 곳을 여는 데 최소 1억원가량이 소요된다"며 "노키아 델 등 세계 일류 기업들이 한국에서 실패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레전자 등 국내 중견업체들이 양질의 제품을 내놔 하이얼이 들어갈 '틈새 시장'을 제거한 것도 또 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하이마트에서 판매하는 이레전자 32인치 LCD TV의 가격이 99만원인 데 비해 하이얼의 동일 사양 제품은 옥션 인터파크 등에서 80만∼10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차이나 디스카운트'에다 가격 경쟁력까지 크게 하락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형 가전시장 역시 국내 제조사들이 중국에 공장을 두고 싼 값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다"며 "하이얼을 비롯한 중국산 제품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