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惠淑 < 이화여대 대학원장 hsllee@ewha.ac.kr >

30조원이나 되는 개인 재산을 내서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회장은 2년 뒤 은퇴해서 자선(慈善)사업에 전념하겠다고 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어 세계 2위 부자인 워런 버핏 회장은 빌 게이츠 재단 사업에 공감해 사상 최대 금액인 37조원을 이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는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나라도 올해 초 삼성그룹이 8000억원,현대차그룹이 1조원을 기부키로 하는 등 대기업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기부금의 사용처를 분명히 하지 않아 여러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으로 양극화 해소에 써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또 노벨상과 같은 권위 있는 국제적인 상을 제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노벨상 기금액이 4500억원 규모라니 최고의 국제적인 상을 제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보면서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연방정부의 각종 기관들이 들어선 워싱턴 중심에,그것도 제일 좋은 자리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입지 조건에서부터 국가가 얼마나 지식의 힘을 중시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은 영국의 과학자이자 평민과 귀족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부자였던 스미스 소니언 박사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신대륙 미국에서 '지식의 증대와 확산'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써 달라고 기부한 돈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1829년 스미스 소니언 박사가 타계한 후 거의 10년 만인 1838년에야 돈을 찾아온 미국 의회는 기증자의 뜻에 맞는 일을 하기 위해 장장 8년 동안이나 논쟁을 거듭한 끝에 1846년 스미스 소니언 인스티튜트를 건립한다.

이곳은 지식의 본산이 되는 18개 박물관과 9개 연구소로 구성된 거대한 기관이다.

연구소에서는 우주의 기원을 비롯해 우리 주변의 사물과 생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지식을 창출(創出)하고,박물관은 전시와 대중교육을 통해 지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식의 증대와 확산에 대한 해석이나 방법이 세월에 따라 변했어도 이 기관은 여전히 세계적인 지식 창출·확산 기관으로 발전해 기증자의 뜻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기부자의 정확한 뜻이 전달되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써야 할지를 서둘러 결정하기보다 철저한 고민과 논쟁의 시간을 거쳐 미래지향적인 안(案)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