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해 보이는 작은 눈,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 덩치,둥근 얼굴을 감싼 까만 곱슬머리…. "차강희입니다"라고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는 40대 중반의 남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이미지는 아니다.

외모만 보면 디자이너라기보다 '아기공룡 둘리'의 만화가 김수정씨를 닮았다.

아니,본인 자체가 만화 캐릭터다.

지난해 11월 '초콜릿폰'이란 별명의 휴대폰을 내놓아 일약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LG전자 차강희 책임연구원(44). '저 얼굴 어디에 끼가 숨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투박하고 소탈한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그는 휴대폰 하나로 새로운 감성 트렌드를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까만 바탕에 빨간 글씨의 터치패드가 배치된 초콜릿폰은 감각적 디자인으로 젊은층에서 '세대 공감'을 얻어내며 국내에서 50만대 이상 팔렸고 해외에서는 수출 4개월 만에 300만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콜릿폰이 그가 휴대폰 디자이너로서 도전한 첫 작품이란 점이다. 대우통신 삼성전자를 거쳐 1991년 LG전자에 입사한 차씨는 원래 비디오,DVD,오디오 등 DDM(Digital Display & Media) 제품군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로 일했다. '휴대폰 디자인을 한 번 맡아 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때가 2004년 늦가을. 이듬해인 2005월 1월 그는 휴대폰을 담당하는 MC디자인연구소로 옮겼다.

"다른 제품을 디자인 하다가 와서 그럴까요. 저는 폰 안에서 폰을 보는 게 아니라,폰 밖에서 폰을 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제3자로서.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디자인 감성을 하나 둘 끄집어내 휴대폰에 입히고 있는데,그 작업이 아주 즐거워요."

그렇다면 초콜릿폰에 담긴 감성의 미학은 무엇일까. 차씨는 "휴대폰 같지 않은 휴대폰을 만들고 싶었다"며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중독성이 강해 언제나 가지고 다니고 싶은,손 안에 착 감기는 '밀도 높은' 제품을 디자인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초콜릿폰에 불필요한 장식을 되도록 배제한 것도,널리 쓰이는 버튼 대신 손으로 살짝 건드리는 터치패드를 과감하게 적용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초콜릿폰 탄생 과정이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무슨 휴대폰이 MP3플레이어처럼 생겼냐,터치패드는 휴대폰에 넣기 힘들다는 둥 갖가지 핀잔도 들었죠. 하지만 남들이 옷을 다 입을 때는 벗고,벗을 때는 입는 게 좋잖아요. 그래서 상품기획과 마케팅 담당자를 설득하느라 부지런히 뛰어다녔어요."

대통령상을 3번이나 받은 베테랑 디자이너의 고집일까. 차 책임연구원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뚝심있게 밀어붙이기로 유명하다. 그와 15년 넘게 일해온 동료 디자이너이자 상사인 김진 상무는 그를 가리켜 '발로 뛰는 디자이너'라고 말한다. 디자인 감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직접 관련 부서와 의견을 조율해 가며 설득하는 데도 능통하다는 것이다.

"제가 좀 영리하게 조율을 잘 하는 편이긴 해요." 차 책임연구원은 약간 머쓱하게 '자기 칭찬'을 한 뒤 "하지만 초콜릿폰의 성공은 정말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의견을 주고 받았던 동료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초콜릿폰이 '대박'을 터뜨린 만큼 "스트레스나 압박감이 심하지는 않냐"는 질문에 그는 싱긋 웃으며 "도전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또 "슬림폴더 비즈니스폰과 아카펠라폰 등 최근 내놓은 후속작도 반응이 괜찮은 편"이라며 "올 가을 깜짝 놀랄 만한 제품을 선보일테니 기대하시라"고 귀띔했다.

"디자이너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밀어주고,띄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세상에는 부품이나 소재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어요. 디자이너가 생각한대로 제품을 구현해낼 수 있는 토대가 잘 갖춰진 셈이죠." 이처럼 기술적 제약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차별화의 성패는 디자인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자 긍지의 원천이다.

고성연 기자 amaz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