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석유생산국으로 부상한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대폭 확대한다.

파이낸셜타임스 11일자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주말 기자들과 만나 "현재 3%인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의 아시아 시장 수출 비중을 향후 10∼15년에 걸쳐 30% 규모로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아시아지역에 에너지 수출을 늘린다는 기본 입장을 밝힌 적은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30%라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기는 처음이다.

이는 에너지 공급 확대를 통해 아시아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러시아의 파워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지난해 석유 수출로 118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책임있는 역할'(responsible role)을 수차례 강조하고 아시아지역 수출 확대를 위한 송유관 건설에도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가 에너지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어느 나라보다 매장량이 풍부하다"며 "아시아 지역 수출을 위한 송유관 건설도 잘 추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러시아는 태평양 국가들에 대한 석유수출을 늘리는 데 천연적 이점도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계획대로 동시베리아 송유관이 완공되면 2012년께는 하루 160만배럴의 원유가 러시아에서 아시아로 보내진다.

현재 중국과 일본은 이 송유관을 자국에 유리하게 건설하기 위해 러시아측과 치열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유럽측에 대해서는 '공정한 룰'(fair rule)을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 원유 수출 확대에 따른 유럽국가들의 불안감을 의식한 듯 "러시아는 석유 수출에 있어 다른 나라들의 이해 관계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EU(유럽연합)가 러시아에 에너지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것만큼 EU측도 관련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현재 유럽에는 석유 파이프라인이 없다"며 "에너지와 관련해서는 생산과 수송,소비에서 모두 공정한 룰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U에 에너지협약을 공정하게 적용하라고도 촉구했다.

하지만 푸틴은 EU에 핵연료를 공급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러시아는 지난 6월 하루 923만배럴의 원유를 생산,사우디아라비아를 4만6000배럴 차이로 제치고 최대 원유생산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원유 증산에 따른 생산설비 포화 등으로 추가 증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또 러시아 경제가 지나치게 석유 수출에 의존하면서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이 오히려 저하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수출량의 35%를 석유에 의존함에 따라 미래 수입원 창출이 부진할 경우 러시아가 '석유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