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잔뜩 낀 10일(현지시간) '9·11테러'로 무너져 내린 세계무역센터(WTC)가 있던 뉴욕 '그라운드 제로'.부시 대통령이 부인 로라 여사 및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등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부시 대통령은 3000여명의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하고 잠시 묵념했다.

5년 전 WTC가 무너져 내린 후 이곳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핸드마이크를 잡고 "미국은 살아있다"고 외치던 그였다.

그런 기억이 교차되어서일까.

부시 대통령의 표정은 다른 어느 때보다 엄숙했다.

헌화를 마친 부시 대통령은 곧바로 인근 성바오로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옆자리에는 복구작업때 숨진 소방대원 조지 하워드의 부친 앨런 하워드가 앉아 소리없이 흐느꼈다.

같은 시각 그라운드제로 인근.수십명의 시위대가 각종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라크 파병 군대를 철수하라' '그라운드 제로 개발을 중단하라' 등.시위대인 안 무이스킨스(77)는 "부시 대통령의 방문은 훨씬 불안해진 미국을 안전해진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치적인 술수"라고 깎아내렸다.

전대미문의 '9·11테러' 5주년을 맞아 미국 전역에선 추모의 물결이 한창이다. 한편에선 9·11테러로 가족을 잃었지만 강화된 이민정책 때문에 가슴 졸이며 살아가는 불법체류 유가족들이 있고 복구작업에 참여했던 이의 70%가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9·11은 정치판에서 더 달아 오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체니 부통령,라이스 국무장관과 공화당 고위인사들은 앞다투어 "미국은 더 안전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이라크전을 거론하며 "안보논리를 악용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바로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를 의식한 행보들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선거때만 되면 반복되는 '북풍(北風) 논란' 등과 별로 다르지 않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편안하게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따르는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을 활용하는 미국과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서 어쩌면 9·11은 앞으로도 한참이나 계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